등록 : 2018.05.06 22:16
수정 : 2018.05.06 22:27
김연철
통일연구원 원장
2005년 10월 개성공단에 있는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한 건물에 남쪽 공무원과 북쪽 공무원이 함께 일했다. 접촉에 관한 규정이 있었지만, 하나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커피를 얻으러 오고, 종이를 빌리러 가고, 담배를 같이 피우며, 그야말로 상시적으로 대화하고 협의했다. 물론 남북관계가 악화하면서 개성의 협의사무소는 ‘통일의 접점’에서 ‘분단의 전선’으로 변했다. 2008년 정부가 바뀌고 대북정책이 달라지자, 북쪽은 남쪽 공무원을 추방했고 사무소 기능이 중단되었다.
4월27일 판문점 선언은 ‘개성의 공동연락사무소’를 합의했다. 남북관계에서 오래된 현안 중 하나다. 1990년 9월 1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쪽은 ‘상주연락사무소’를 제안했고, 이후 남북기본합의서 1장 7조에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 설치·운영’으로 명문화했다. 그러나 이후 합의는 이행되지 않았다. 2005년 개성의 협의사무소도 대체로 ‘교류협력’에 한정했다.
지금 왜 상설 대화기구가 중요한가? 판문점에서 남과 북은 평화의 길을 향해 떠났다. 산이 아니라 산맥을 넘는 험난한 길이고, 한참을 걸어도 안개가 걷히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소통이 중요하다. 오해와 불신이 생길 때마다 대화하고 협의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상 간의 핫라인 통화가 이루어지고 더 많은 통신 접촉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래도 얼굴을 맞대는 만남의 공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수많은 분야별 실무회담이 열리겠지만, 그래도 상설 대화공간이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연락사무소를 서울과 평양의 상주대표부로 가기 위한 잠정적 조처로 해석한다.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동서독의 상주대표부 운영 경험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동베를린의 서독대표부와 본의 동독대표부는 기능과 역할이 달랐다. 본의 동독대표부는 2국가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의미했다. 그러나 동베를린의 서독대표부는 분단의 특성을 드러냈다. 접촉의 공간이었지만, 때로는 서독으로 탈출하기 위한 동독 사람들의 점거로 몸살을 앓았다. 교류의 비대칭성으로 동베를린의 서독대표부는 언제나 분주했지만, 본의 동독대표부는 적막했다. 상호 대표부는 또한 분단의 고착화라는 비판도 받았다. 상호 대표부가 아니라 ‘공동 연락사무소’가 한반도의 특성에 훨씬 적합하다.
공동연락사무소는 개성공단의 ‘협의사무소’ 건물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멀쩡한 건물이 있는데 새로 지을 이유가 없다. 다만 개성공단의 전기가 끊긴 지 벌써 2년 3개월이 지났다. 건물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연락사무소는 흑백사진으로 변한 개성공단에서 살아 움직이는 아주 작은 색깔의 공간이리라. 개성공단의 꿈도 다시 살리기를 바란다. 비가 오고 눈이 오면 공장을 걱정하는 기업인들의 눈물도 씻어주기를 바란다.
연락사무소는 할 일이 많다. 현재의 제재 수준에서도 사회문화 교류는 가능하다. 이미 남북이 합의한 체육과 문화 교류도 적지 않다. 유엔 제재위원회의 유권해석이 필요하지만, 공적 협력사업도 시작할 수 있다. 분야별로 남북의 공동조사도 이루어져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관계정상화의 과정이 시작되면 경제협력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개성에 다시 ‘통일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통일은 어울림이다. 차이를 인정하는 공존의 길이고, 서로 이익을 만드는 공영의 길이다. 정상회담의 정례화, 분야별 회담의 상시화, 그리고 공동연락사무소의 상설화가 이루어지면 남과 북은 남북연합의 문으로 진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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