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07 17:50
수정 : 2018.05.08 00:13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2003년 4월26일, 한 소년이 목을 맸다. 열아홉살 인생 이력은 빼곡했다. 시조시인, 아마추어 연극배우, 청소년 운동가,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육우당’으로 알려져 있다.
녹차와 파운데이션, 술, 담배, 묵주, 수면제를 자신의 여섯 친구라 했다. 천주교 신자였으며 세례명은 안토니오. 안토니오 또는 육우당의 유서에는 “세상은 아비규환인 것 같습니다. 늘 아무것도 이룬 게 없고 허무함과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가끔은 동성애자로 태어난 걸 후회하기도 했구요. 이 나라가 싫고 이 세상이 싫습니다. 이성애자 기피증도 넌덜머리 나구요. 강자도 약자도 없는 그런 천국에서 살고 싶습니다”라는 글이 담겨 있었다.
그가 떠난 이후 차별금지법은 2007년과 2010년, 2012년 총 3차례에 걸쳐 입법 예고되었다, 포기되거나 폐기되었다. 예전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을 제안한 이유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며,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구제조치를 규정한 기본법을 제정함으로써…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사유는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보호 처분, 성적 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이 구체적으로 열거되었다.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른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번번이 좌절됐다. 개신교계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었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동성애는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피부색처럼 조장한다고 조장되지 않는다. 내 선택과 상관없는 정체성이다. 질병도 아니다. 출산율 저하의 원인도 아니며, 문란한 성관계 문제도 아니다. 에이즈(AIDS·후천면역결핍증) 역시 동성애로 인한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아님’은 자료 검색만 제대로 해도 찾을 수 있는 상식적인 정보다. 지금껏 가짜뉴스에 속고 있다면, 그대는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다. 성실하지 못함으로 타인의 근본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어떤 이들은 차별금지법 반대를 넘어서 충남인권조례 폐지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누구의 존재를 반대하기 위해 인권의 보편성마저 후퇴시켰다. 이를 우려한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 위원회(이하 자유권 위원회)와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이하 사회권 위원회)는 2016년과 2017년 한국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최종 권고했다. 특히 자유권 위원회는 ‘인종,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를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분명히 못 박았다.
그러나 최근 법무부는 ‘우리 정부의 인권정책에 관한 기본계획’이라고 밝히며 공개한 제3차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이하 인권기본계획)에서 ‘병력자 및 성적 소수자’ 목차를 삭제했다. 문재인 정부의 인권정책 기본계획에서 이들을 사실상 배제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독립된 항목으로 존재했던 것이었다.
육우당은 어머니께 자신의 시신을 화장해달라고 했다. ‘모든 것을 놓은 마당에 거창하게 해봤자 허례허식밖에 안 될테니….’ 그가 살았다면 34살. 게이 청년에게 지금 한국은 어떨까. 인권조례가 폐지되고, 인권기본계획에서 성소수자가 삭제당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현실. 그를 붙잡아줄 일곱번째 벗은 만났을까. 살아남은 자를 대신해,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다. 무슨 낯으로 인권과 평화의 시대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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