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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29 17:54 수정 : 2018.05.29 21:21

이관후
서강대 글로컬한국정치사상연구소 연구원

지난 5월24일부터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대한 공개변론을 시작했다. 이 사건은 촛불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우선 소송이 제기된 지 6년 만에 바로 이 시점에 헌법재판소가 공개변론을 시작했다는 점이 그렇다. 헌재 소장을 포함해 5명의 헌법재판관이 오는 9월에 퇴임을 하는데, 새로운 재판관들이 임명되면 이에 대한 논의를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뤄도 될 만한 사항이라고 생각되면 더 미뤄두어도 그만이다. 헌재가 공개변론을 시작해 9월 안에 결론을 내려는 이유는, 이 사안이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무엇이 이 인식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물론 촛불과 미투다. 87년 6월이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듯이, 촛불은 미투로 이어졌다. 그때 노동자가 민주주의였다면, 이제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당대의 가장 첨예한 갈등을 표출한다. 민주주의는 은폐된 갈등과 억압된 주체들이 공적 담론의 장으로 나올 수 있는 틈새를 열어준다. 그리고 그 좁은 틈새로 이내 엄청난 빛이 쏟아져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담론을 다루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공적 담론이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는 공간은 청와대 국민청원과 헌법재판소의 위헌 소송이다. 이 방식은 새로운 민주주의나 민주주의의 확장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한계가 분명한 과거 민주주의의 수단들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에서는 ‘위임민주주의’와 ‘정치의 사법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국민의 힘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는 한 개인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대선은 주권이 발휘되는 실질적 절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영웅이 탄생하는 신화의 공간이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들은 모두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국민들은 이 영웅들에게 정치를 위임하고, 환호하거나 절망하거나 추앙하거나 비난하는 대상으로 삼았다. 이 정치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데, 그 이유는 위임민주주의가 좋을 때는 한없이 좋다가 나쁠 때는 한없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위임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중요한 공적 결정을 정치가 내리지 못하거나 일부러 회피하고 그 책임과 권한을 법원에 의지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것을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고 부르는 것은 기만이다. 그것은 정치의 부재를 의미한다. 물론 헌법은 추상적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그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핵심적 가치의 확립과 변화는 원칙적으로 주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주권은 법원이 아니라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에 의해 대표된다. 그중에서도 입법부가 주권을 담지하는 기관이다. 그 권한을 선출되지 않은 법원이 대신할 수는 없다. 사법적 개입은 헌법에서 보장한 인권이 다수에 의해 보호받지 못할 경우에 구제할 수 있는 임시방편이지 일반적인 민주주의의 방식이 아니다.

공적 담론이 다루어야 할 내용은 바뀌었는데, 형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는 새로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청와대와 헌법재판소에 호소하는 방식으로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촛불이 혁명이 아니라 거대한 청원운동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을 인정하게 되는 꼴이다. 촛불이 무엇이었는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미투를, 페미니즘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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