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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12 18:21 수정 : 2018.06.13 15:58

이원재
LAB2050 대표

그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17살이었다. 몇차례밖에 만나지 못한 아버지는 수시로 감옥을 들락거렸다.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던 그는, 스탠퍼드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면서 고향과 빈곤을 동시에 벗어난다. 구글과 백악관에서 했던 인턴 생활은 그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에서 더 멀어지게 했다.

백악관에서 일하던 중, 그와 일곱달 차이밖에 나지 않던 사촌은 고향에서 총격으로 사망했다. 휴가 때 고향에 돌아왔을 때 만난 지역 활동가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냐고.

스물두살에 그는 질문에 행동으로 답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시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리고 스물여섯살 때 시장에 당선됐다. 마이클 텁스는 그렇게 인구 30만명이 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스톡턴의 시장이 됐다.

당선 2년차인 올해, 텁스 시장은 2019년부터 미국 도시로는 처음으로 대규모 기본소득 지급 실험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연간 소득 2만6천달러 이하인 시민 100명을 무작위로 뽑아 18개월 동안 매달 500달러씩 지급하기로 했다.

젊은 시장이 실험에 나선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의 어머니가 겪은 일은 도시의 다른 많은 어머니들이 겪은 일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어머니에게 매달 500달러가 그냥 주어졌다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일어서는 힘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정책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든다’, ‘노동의 가치를 무시한다’는 비판도 높다. 하지만 두 개의 직업을 갖고 하루 14시간을 일하고도 아이들의 식사와 밀려드는 청구서들을 감당하기 버겁다면 존엄한 노동을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가 경험으로부터 얻은 생각이다.

스톡턴은 2012년 파산을 선언한 도시다. 요트장을 새로 건설하는 등 보여주기식 사업에 오랜 기간 너무 많은 지출을 한 결과였다. 범죄율은 치솟았다. 건물에만 투자하고 사람에겐 투자하지 않은 결과였다.

기존 정책 패러다임으로는 이 도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주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례가 없는 정책을 전면 시행할 수는 없다. 아무리 시장이라도 권한에 한계가 있다. 그가 실험에 나서게 된 이유다.

오늘은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다. 전국에서 선출될 지방정부 수장들이 할 일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일을 꼽으라면 실험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수입한 정책으로 연명했다. 국책연구소 정책제안 보고서의 근거에는 항상 외국 사례가 들어갔다. 고위공무원이 외국 연수를 다녀오면 정책이 뚝딱 나왔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효과가 나올지는 뒷전이었다. 우리 국민들은 ‘자기 땅의 이방인들’로 살아온 셈이다.

그런데 지금은 큰 정책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술혁신과 인구 변동은 산업사회에 짜인 노동과 복지 정책 패러다임을 흔들고 있다. 이 와중에 한국은 선진국에 진입했다. 이제 벤치마킹할 나라도 마땅치 않다. 조금씩 실험해보면서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가장 유력한 방법은 정책 실험이다. 대담한 정책을 펼치되, 정교한 방법으로 제한된 범위 안에서 시행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를 과학적으로 평가해 더 키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선출직 단체장이 이끄는 지방정부는 좋은 실험 장소다. 제한적 규모라도 정교하게 실험하면 국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할 큰 결과를 낼 수 있다. 새로 뽑히는 단체장들이 27살 스톡턴 시장의 담대함을 닮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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