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7.22 17:34
수정 : 2018.07.22 19:59
김유익
다문화 ‘생활’ 통역
1995년생인 상하이 출신 다바오 군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길거리에서 와플장사 등 이런저런 알바를 전전하다, 빵 굽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중산층 부모를 둔 덕에 중국 대학입시인 가오카오(高考)를 치르지 않는 민립대안대학에 입학했다.
전공 없이 스스로 원하는 공부를 선택하는 미국식 리버럴 아츠 칼리지를 표방한 운영방침 속에서 미국인 교수가 소개해준, 생태시스템 디자인 방법인 퍼머컬처(Permaculture)를 접하게 됐다. 독학으로 아름다운 채소밭 정원과 흙으로 된 빵가마를 친구들과 함께 한 학기 만에 완성했다. 그는 유기농 채소, 닭과 오리를 키우고, 천연효모 빵을 굽는 것에 재미를 느껴 다시 학교를 중퇴하고, 근교 농촌으로 들어가 생산물을 도시민들에게 팔아가며 사는 자급자족형 삶을 실천하고 있다. 타고난 예술적 감각과 손재주 덕에 가구와 도구도 스스로 만들어 작고 허름한 농가 안팎을 꾸며 놓으니, 잡지 <킨포크>에 나올 법한 그림같은 집이 됐다.
83년생 동북지역 출신 싼무 씨는 대학 공부를 한 광저우에서 결혼하고 한살배기 딸과 함께 일가족이 살아간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창저우라는 섬마을에서 친구들과 낡은 주택을 임차해 달팽이집이라는 셰어하우스 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와 환경엔지오에도 재직했던 그는 급여를 받는 직업적 교사와 활동가로서의 일에 한계를 느껴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이 믿는 좋은 삶과 일이 하나가 되는 생활방식을 택했다.
텃밭도 가꾸고, 어렸을 때 ‘조선족’ 이웃에게 배운 김치도 만들어, 한달에 두어번 열리는 파머스 마켓에 내다 팔기도 한다. 주말마다 중국산 유기농 밀가루로 장기인 만두를 빚거나 손국수를 말아서 이웃과 함께하는 슬로 분식집도 연다. 건강한 음식의 생산과 그 인문 생태적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농장 투어를 기획하고, 도시민들에게 느리고 소박하며 행복한 삶을 소개한다. 최근 달팽이집 주민이 된 나는 외출하지 않는 주말에는 슬로 분식집 손님들에게 커피나 차를 대접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내키면 직접 담근 고추장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볼까도 생각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중국은 마윈이나 시진핑 같은 경제와 정치의 아이콘으로만 손에 잡히는 이웃 나라다. 이따금 <삼국지> 등을 통해 고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중화제국으로 호명되기도 하지만, 학교에서 한자를 배우지 않은 청년층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중국에도 유학생, 그리고 십년 넘게 중국에 터전을 잡고 사는 ‘신조선족’ 한국인이 늘어나지만, 이들에게 중국은 팍팍한 헬조선 삶을 벗어날 경제적 돌파구로만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예전 1~2세대 미국 이민자들처럼 현지인들과 화합하지 못하고 겉돌다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중국에서의 부동산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다시 동남아 드림을 꿈꾸는 이들만 늘어난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부대끼며 알게 되는 중국인들의 삶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입체적이다.
나도 얼마 전 상하이에서 해상 실크로드의 기점이자 중국의 제3세계 수도라는 광저우로 이주한 김에 한·중·일 삼국지 프레임을 벗어나서 조금 더 즐겁고 다양한 만남과 일거리를 기대하고 있다. 삼성 스마트폰 판매량 등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14억 중국 시장을 노려랏!” 같은 이런 ‘대기업스러운’ 재미없는 목표 대신 다양한 범주의 눈을 틔워 대륙의 문을 노크해보는 것이 어떨까? 아! 어른들은, 밑천이 없어서 이런 경험을 꿈도 꾸지 못하는 가난한 청년들에게 간섭 대신 노자나 좀 챙겨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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