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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22 18:14 수정 : 2018.08.22 19:07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소장

규제 완화가 이 정부에서도 국정의 바탕이 될 모양이다. 정명(正名)이 중요하다 했으니, 혼란스러운 말부터 살펴봐야겠다. 언제부턴가 규제 ‘완화’라는 말이 규제 ‘개혁’으로 바뀌었고, 요즘에는 규제 혁신이나 혁파라는 표현까지 보인다. 혹자는 오히려 강화해야 할 규제도 있으니 개혁이나 혁신이 옳다고 강변하지만, 내게는 푸는 것(=완화)을 문제 삼는 여론을 피하려는 정치, 또는 조지 오웰식의 ‘이중사고’ 전략 정도로 보인다.

규제라면 새 정부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 사태가 크게 놀랍지는 않다. 규제 완화는 김영삼 정부 이후 20년 이상 경제사회 정책의 기조가 아니었던가. 주류 ‘경제권력’이 겨우 일 년쯤 숨을 죽였을 뿐, 고용 부진과 소득 감소라는 기회를 얻자 제자리인 시장만능주의(또는 신자유주의)를 회복한 것이라 여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의료기기 규제 완화부터 선언했으나 내용도 그리 참신하지 않다. 논란 중인 인터넷은행이나 원격의료도 그렇고, 차례를 기다리는 개인정보 보호나 수도권 규제도 오래 묵긴 마찬가지다. 최종, 최고 규제 개혁 대상으로는 수십년 되풀이한 그대로 노동과 대기업 규제를 풀자고 할 것이다. ‘기업의 기’를 살리고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명분이 눈에 선하다.

예나 지금이나 규제 개혁은 정책이 아니라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기승전-규제, 규제 개혁 만능론이 허구인 이유를 두 가지만 지적한다. 첫째, 규제를 풀거나 없앤다고 성과를 낸다는 근거가 약하다. 혁신, 플랫폼, 빅데이터, 인공지능, 바이오 등 말만 화려하지 어떻게 성장하고 일자리가 느는지 논리의 고리를 찾을 수 없다.

인터넷은행을 허용한다고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가? 공유 경제 플랫폼을 확대하면 무슨 산업이 크고 어떤 일자리가 더 생기나? 경제 활동과 일자리는 부문을 오갈 뿐, 성장과 확대는 전체에 이르지 못한다. 모두가 관심인 일자리는 오히려 줄 수밖에 없다.

둘째, 만에 하나 무슨 성장을 해도 일부가 성과를 독점하고 불평등이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의료기기, 바이오산업, 원격의료의 규제를 풀어 산업이 흥하고 기업이 돈을 많이 번다고 치자. 경총이 건의한 대로 영리 병원까지 허용해서 의료 서비스 산업이 성장한다고 가정하자. 우버와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를 마음껏 할 수 있다면?

성장의 손익계산서에서는 불평등만 두드러질 뿐이다. 아마존 같은 플랫폼 경제가 번영한 결과가 소매점과 골목 상권의 몰락이다. 우버는 초대형 기업이 되었지만 수많은 택시 운전사는 직업을 잃었다. 원격의료를 늘리면 환자는 의원과 대형 병원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할까?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자영업자 사이만 문제가 아니다. 이익은 개인화하고 부담은 사회화하는 것,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 또한 불평등의 다른 측면이다. 의료기기나 원격의료를 생각하면 현실감이 생긴다. 모든 국민이 돈을 부담해 성장을 뒷받침해야 하는데, 일부 병원이나 기업이 이익을 독차지한다면? 환자에게 돌아가는 건강 혜택이 불확실할수록 균형은 더 기운다.

정부와 책임자에게 하는 부탁.

국정철학까지는 당장 어쩔 수 없다고 치고, 규제 개혁이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목표하는 결과는 무엇인지 모두에게 설명해주기 바란다. ‘결과 중심’, ‘성과 중심’이라는 정책 모형을 잘 안다고 믿고, 시작에서 결과에 이르는 ‘논리 체인’이 설명의 중심이라는 것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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