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28 18:12
수정 : 2018.08.29 09:12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각국의 소득 자료를 분석해 사람들의 소득 분포가 때나 장소와 무관하게 안정적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일종의 ‘자연법칙’으로 간주했고, 소득 분배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헛된 시도로 끝나거나 부를 파괴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좋은 의도로 세상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기대와 달리 나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도처에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자기조정 시장의 반작용으로 인해 고용이 축소되고 노동자의 몫은 오히려 필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철학·역사·사회학·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경제학의 지평을 넓히고 ‘현세의 철학자’라 불렸던 앨버트 허시먼(1915~2012)이라는 전설적인 인물이 있다. 그는 개혁의 덧없음이나 위험을 설파했던 담론들이 ‘법칙성’과 ‘과학’의 외투를 걸쳤지만 본질은 ‘반동의 수사학’(rhetoric of reaction)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들 담론은 개혁이 표방하는 ‘목적’을 노골적으로 반박하기는 곤란한 상황에서 그 주장에 흠집을 냄으로써 반대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미사여구’로, 명분에서 밀려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서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키는 데는 효과적인 전략인 셈이다.
이들 담론은 인간의 예측 능력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통찰을 계승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 등이 탐욕이나 끊임없는 축재욕과 같은 인간의 뿌리 깊은 악덕들이 잘 이끌어지기만 한다면 공동선의 달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발전시켰다면, ‘반동의 수사학’은 이를 뒤집고,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를 가능성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으로 바꿔놓았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개념이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불확실성에 주목하는 개방적 사고방식이라면, ‘반동의 수사학’은 인간 사회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보는 오만하고도 폐쇄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게 허시먼의 판단이다.
목적을 가진 사회적 행위는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결과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으며 어느 쪽이 더 큰 지는 분명치 않다. 가령, 최저임금의 인상은 고용을 줄이는 힘으로도 작용하겠지만 생산성을 높이거나 매출을 늘림으로써 고용을 늘리는 힘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이들 힘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클지, 결과적으로 어느 방향의 힘이 더 클지는 선험적으로 알 수 없다. 개혁이 의도한 결과를 낳을지, 상황을 악화시킬지 여부는 최초 정책집행 이후의 후속 대응 양상과도 관련이 있다. 집행된 정책의 결과가 처음 단계에서 다소 나쁘더라도 정책당국은 새로운 정보를 활용해 프로그램을 수정하거나 개선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허시먼은 ‘반동’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가 더욱 경계했던 것은 그 ‘수사학’, 모든 의식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완고하고도 결정론적인 토론의 ‘태도’였다. 갈등의 긍정적 기능에 주목하고 토론의 생산적 성격을 강조했던 그가 우리의 소득주도 성장 논쟁을 본다면 어떤 충고를 할까?
정책의 공론장에 들어서려면 “일자리는 기업이 창출한다”거나 “경제문제의 최종 심판관은 시장이어야 한다”는 식의 미리 정해진 답을 되풀이하는 대신 시장의 상황은 구체적으로 어떤지, 정책 변화에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반응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관한 세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임해야 한다는 이야기부터 들려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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