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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17 17:55 수정 : 2018.10.18 12:52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소장

공금으로 명품 가방을 샀다? 사립 유치원의 비리가 순식간에 사회적 공분을 불렀지만, 걱정이 없던 부모가 얼마나 될까 싶다. 이 정도는 아니어도 밥은 제대로 먹일까, 학대는 없나, 늘 노심초사하지 않았던가.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감시하자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 유치원의 ‘질’은 늘 문제였고 언제라도 터질 참이었다.

국가 지원금을 엉뚱하게 쓰는 문제는 그래도 고치기 쉽다. 꼼꼼하게 감독하고 부정을 처벌하면 황당한 위법은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운영자의 반발과 저항이 강하다지만, 그 이해관계 정치도 학생을 맡긴 많은 부모의 압력을 이길 수는 없으리라. 이번 기회에 재정뿐 아니라 시설, 교사, 프로그램과 같은 ‘거시적’ 질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

법이나 규정, 감시와 감독으로도 어쩔 수 없는 ‘미시적’ 질을 개선할 수 있으면 또 다른 기회다. 유치원 학부모가 기대하는 교육 환경은 겉보기만 그럴듯한 시설과 숫자로 치환되는 교사에 그치지 않는다. 애들이 제대로 배우고 바르게 커가는 것이 훨씬 큰 관심사일 터, 이런 결과는 대부분 미시적 질이 결정한다.

어떻게 질을 보증할 수 있는지가 과제다. 시시티브이로 노골적인 아동학대야 막을 수 있겠지만, 교사-학생 사이의 상호작용, 교사가 보이고 가르치는 것, 어린이가 배우는 바를 감시하고 통제할 도리가 없다. 감사를 통해 이상한 물건을 사고 인건비를 유용하는 것은 예방할 수 있다 해도, 같은 돈으로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교육을 하려 노력했는지 외부인이 다 알기는 어렵다.

병원과 의료를 다룰 기회가 많은 내게는 이번 유치원 문제가 낯설지 않다. 둘 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휴먼 서비스’인데다, 미시적 질이 바람직한 결과를 내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질을 보증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슷하다. 의사(교사)가 최선을 다해 최고의 실력으로 수술(교육)하기를 바라지만, 감사한다고 시시티브이를 단다고 보이지 않는 질을 규제할 수는 없다.

법과 규정으로 또는 감시와 처벌로 질을 보장할 수 없을 때, ‘공공화’가 한가지 대안이다. 국공립 유치원은 대안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니, 국공립을 늘리라는 요구가 거세다. 거시적 질에는 큰 차이가 없을 때도 국공립이 사립의 문제를 줄일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이유, 그것은 구성원의 인식과 기관이 지향하는 가치, 개인과 조직의 문화 때문에 공공성에서 차이가 나서다. 일부 전문가가 이름 붙인 대로라면 ‘문화·인지적 제도’의 차이다.

유치원이 그렇듯 의료 이용자도 질과 공공성에 민감하다. 공공성이 높은 의료란 우리가 아는 그대로, 감당할 수 있는 비용, 질 높은 진료와 관계, 접근성, 경제적 능력과 무관한 형평과 공정성 등 한마디로 모든 사람에게 인권과 건강권을 보장하는 의료를 말한다. 다른 가치를 제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영리 추구가 병원의 문화·인지적 제도로 굳어지면, 공공성은 위축되고 권리는 충족되기 어렵다. 지금 사립 병원이 처한 구조 환경, 그리고 그 결과가 사립 유치원과 얼마나 다를까.

유치원과 같은 이유로 공공 병원을 늘려야 한다. 오해를 피하려 보태자면, 이때 공공 병원은 꼭 국공립이 아니라 공공화된 사립 병원까지 포함한다. 얼마나 더 늘려야 할까? 국공립 유치원이 선생이다. 사립이 공공과 비교되고 그 때문에 압력을 받으며, 무엇보다 이용자가 비교·판단할 수준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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