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29 18:38
수정 : 2018.10.29 23:46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2년 전이었다. 최순실의 태블릿 피시가 스모킹 건이 되었다. 박근혜 왕국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2016년 10월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첫 촛불을 들었다. 그해를 넘어 스물세차례 매주 토요일, 마치 출석 도장을 찍듯 모였다. 성실했으며 조용했고 평화로웠다. 촛불혁명은 연인원 1700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소임을 다했다. 문재인 정부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취임사를 남겼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근대를 청산한 사건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는 국무회의에서 “오랜 세월 사회 곳곳에 누적된 적폐를 개혁하겠다”며 적폐청산(積弊淸算)을 들고나왔다. 적폐청산이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여온 악습을 청산한다는 의미였다. 익숙지 않았던 그 말은 되레 그녀를 목적어 삼았다. 이명박도 감옥에 갔다. 그러나 돈 받은 사람은 감옥에 있어도 돈 준 사람은 감옥 밖으로 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다. 이 사람이 가진 권력은 대를 잇고 시대를 뛰어넘으니 권력을 가지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땅콩 회항과 물병 갑질은 그들을 가두지 못했다. 은산분리법, 규제프리존법 같은 거추장스러운 것들도 모두 해체되는 마당이다. 그들에게 기회는 늘 평등하고 과정은 언제나 공정하며 결과도 항상 정의롭다.
그래서 “이러려고 촛불 든 줄 아는가?” 이런 말 할 줄 알았지? 아니다. 적폐청산 속도는 느리고, 개혁 과제는 여전히 산 넘어 산이지만 그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난 광장에서 못 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촛불광장은 오로지 한가지 목표로 인내하고 있었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분명하고 동일한 목표였다. 목표를 제외하면 모두 달랐다. 서로의 이질감에 대해 물을 법도 한데 묻지 않았다. 가치들은 경합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고 논쟁은 자라지 않았다. 이상한 현상이라 생각했지만 거대한 물결을 거스를 용기도 힘도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냥 물결을 탔다. 휩쓸려 죽지만 말자 매일 다짐했다. 그래서였을까, 촛불 이후 여러 현상이 이해되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포함한, 직접민주주의 열기가 온데간데없는 부재조차 이해했다. 동료들 사이에 비난의 화살이 난무하는 것도 있을 법한 일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했던 혁명은 앞을 보는 것이었으니까. 당대의 몫은 거기까지였으니까.
그러나 이제 2년이 되니 질문하고 싶어졌다. 앞이 아닌 옆을 보고 싶어졌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박근혜도 아니고 이명박도 아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아니다. 그들은 너무 벅차고 화려하다. 2주년 촛불 행사위는 문재인 정부 2년, 개혁 역주행을 비판했다. 반면 아직 기다려줄 때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어느 쪽이든 여전히 없는 것은 ‘나’이고 있는 것은 그들이다. 새로운 정부의 국민들은 웬만한 모든 일을 청와대 게시판으로 가져갔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했던 이들이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넘긴다. 공도 그의 것이고 과도 그의 것이다. 이러면 우리가 이룬 촛불혁명의 성패는 문재인 정부에 달려 있는 것 아니겠나.
오히려 미투와 같은 외침. 조곤조곤했으나 온 세계를 울리던 목소리들. ‘정치하는 엄마들’처럼 생활로 정치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생존의 터전에서 권리를 찾아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들. 조금씩 자기 삶을 변화시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에게서 촛불을 본다. 권력의 반대편에 있지만 권리의 성을 쌓고 있는 사람들. 우공이산이라 했던가. 불가능했던 일들을 이뤄낸 힘없는 사람들의 연대가 산을 옮겼다. 그러니 촛불의 주인공은 이제 나와 당신이다. 2주년 촛불을 맞는 다짐과 바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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