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06 18:08
수정 : 2018.11.06 19:08
이원재
LAB2050 대표
“우리는 인류의 노동을 재탄생시켜야 합니다… 공동체를 위한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일단의 젊은이들은 데이터를 생성하는 노동조차도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100% 평가받는 공동체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신문명도시를 창조합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연설 중 귀에 꽂히는 대목이 있었다. 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18 여시재포럼’ 기조연설의 한 대목이었다. 새로운 가치를 지닌 도시를 통해 현대 인류의 문제를 풀어보자는 제안이었다.
근대 도시는 전근대 문제의 해결 공간이었다. 시민들은 일자리와 자유와 부를 도시에서 찾았다. 더 나아가 도시는 고도의 집중과 효율이 지배하며 창조까지 일어나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공간으로 진화하며 20세기 산업사회를 이끌었다.
지식과 금융과 문화콘텐츠가 겹친 뉴욕은 지식인들의 로망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첨단산업과 급진적 사회문화가 융합된 기적의 장소였다. 파리와 바르셀로나가 이룬 건축 미학과 산업의 조화에 인류는 넋을 잃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도시는 효율적이면서 친환경적이기까지 한 공간’이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도시는 자본주의의 그늘도 함께 짊어졌다. 뉴욕의 지하철은 가장 지저분하며, 샌프란시스코의 집값은 가장 빠르게 치솟았고, 파리는 노숙인 3천명이 거리에서 지내는 도시가 되었고, 바르셀로나는 관광객 때문에 지역주민이 못 살겠다며 과잉관광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디지털화되고, 자동화되고, 개별화되면서도 연결에 대한 갈급함이 커지는 21세기 인류에게 도시는 거대하게 쌓아둔 부채가 되고 말았다. 도시의 승리는 여전히 반쪽이다.
이제 문제 공간인 도시를 다시 해결 공간으로 되돌려야 한다. 하지만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려 하면 그 문제들도 잘 풀리기 어렵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래를 먼저 실험하는 구실을 도시가 감당해야 한다.
마침 중국이 앞장서서 실험을 펼치고 있다. 베이징 근처에 새로 개발 중인 ‘슝안 신구’는 대표적 현장이다. 자율주행 중심으로 이뤄진 교통수단을 지하로 몰아넣고, 지상 면적 40%를 숲으로 유지하겠다는 신도시 실험이다. 무인 마트를 도입하고 로봇 경비를 집어넣고 블록체인으로 부동산 거래를 한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무엇을 위한 도시인가’를 명확하게 알 수 없어서다. 그 도시에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며 자연과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좋은 도시계획이다.
한국에서도 스마트도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부산시와 세종시에서 시범사업도 시작됐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도 고민도 많아 보인다.
세가지 문제가 핵심이다. 첫째, 켜켜이 쌓인 낡은 규제가 문제다. 미래를 실험할 수 있도록 새로운 규제 틀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단기적 시각이 문제다. 정권 임기 안에 완성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미래를 단계적으로 실험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셋째다. 사용할 기술만 명확할 뿐, 지향하는 가치가 명확하지 않다. 기술은 실행단계에서 필요한 수단이다. ‘사람중심’과 ‘환경적 지속가능성’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명확하게 담아야, 인공지능이든 블록체인이든 들여오는 의미가 생긴다. 스마트도시 기획안의 1장에는 어떤 문제를 풀 것이며 어떻게 그 문제를 정의할 것인지가 담겨야 한다.
도시는 장밋빛 유토피아도, 잿빛 디스토피아도 아직은 아니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전쟁터다. 도시와 미래 노동과 새로운 문명을 겹친 반 총장의 연설이 인상 깊었던 이유다. 어쩌면 지금 우리 도시에서, 새로운 문명이 승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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