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14 17:38
수정 : 2018.11.15 14:12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소장
79, 73, 63, 58, 56, 54, 35….
서울시 종로구 고시원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나이다.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였고,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은 사람도 여럿이었다고 한다. 왜 고시원이며 왜 불이 났는지, 왜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는지, 죽음이 증언한다.
의정부에서는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그제까지 한달 동안 시청에서 농성을 벌였다. 자녀들이 돌봄과 복지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대책을 요구했다고 한다. 사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몸으로 발언한 일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봄만 해도 부모들이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68일이나 천막 농성을 견뎌냈다.
좋은 공공병원을 만든다고 온 나라에 이름을 알렸던 성남시의료원은 개원을 앞두고 경영방침 때문에 시끄럽다. 새로 취임한 시장이 더 고급 진료를 하고 수익을 늘리라고 주문했다는 것이 논란거리다. 속사정이야 복잡하겠지만 권력의 균형을 셈하는 것은 간단하다. 누가 더 부담하고 누가 더 혜택을 볼 것인가. 새로운 방향이 사실이라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수는 없다. 누가 누구를 대표해 공공병원의 방향을 말하고 정하는 것인가.
주거 빈곤, 발달장애, 가난한 사람의 건강은 좀처럼 주목받지 못한다. 폭등한 아파트값에 맞춘 종합부동산세 인상에는 두고두고 논쟁을 벌이지만, 그야말로 열악한 주거는 ‘참사’가 나야 겨우 며칠 짧은 뉴스로 소비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질병의 고통도 마찬가지. 사람이 줄어 노인만 남은 시골은 아예 ‘의료 시장’이 무너졌으나 필수 의료를 어떻게 할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누구도 대표하지 않으니, 시끄럽게 농성하고 때로 몸으로 증언해야 하는 사정이다.
주거 복지, 돌봄 부담, 공공의료를 몰라서 그럴까? 중요한 문제라고 모두가 안다. 주거와 돌봄과 의료의 불평등을 줄이려면 이들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그러려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정책 지식도 튼튼하다. 재정을 늘리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릴 것, 그것도 소득세와 법인세를 고쳐야 한다는 정설을 모르는 정치인이 있을까?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 하지 못하는 것일 뿐.
다시 정치, 그것도 민주주의가 문제다. 상투적 표현이지만 이보다 더 뚜렷한 말은 없으니, ‘가난하고 병든 자’를 대표하는 민주 정치가 무능하면 진보는 불가능하다. 감독과 처벌로, 시설 하나를 더 짓는 것으로, 또는 자원봉사와 자선으로는 고시원 화재, 돌봄 난민, 의료 불평등이 나아지지 않는다. 스스로 또는 누군가 그들을 대표하되 그 힘이 법, 정책, 예산에 영향을 미쳐야 크고 너르게 방법을 구할 수 있다. 더 커야 끝내 뿌리까지 닿을 수 있다.
고통과 생명의 불평등한 정치를 말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어렴풋한 방향만 짐작한다. 변명하자면 저 유명한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도 꽤 답답했던 모양이다. 얼마 전 한국에 왔을 때, 불평등에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는 정치를 일러 ‘블랙박스’라 표현할 정도였다.
원론적인 방향으로 맺을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더 넓고 더 깊게, 강화하고 심화해야 한다는 것. 다만, ‘~되어야 한다’는 수동태로서의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실천, 능동태로서의 민주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면, 형식과 제도를 더 민주화하도록 압력을 만드는 것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하자고 요구하거나 찬성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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