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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18 18:20 수정 : 2018.11.19 09:22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예민한 편이 아닌데도 미세먼지 탓에 힘들다. 눈도 따끔하고 목도 칼칼하며, 무엇보다 탈모가 더 심해진 것 같아 속상하다. 미세먼지로 겪는 고통으로 이미 힘든데 그 원인이 불명확하니 더 심란하다. 대충이나마 그 원인을 안다면, 바로잡으려 노력하거나 최소한 화풀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2년 전이던가 그런 뉴스가 있었다. 고등어를 구우면 미세먼지가 엄청 생긴다고. 시시껄렁한 대학교수나 믿을 수 없는 기자가 말한 게 아니다. 무려 대한민국의 환경부가 발표한 공신력 높은 정보다. 이제 되었다. 당장 구운 고등어를 끊겠다. 그것을 팔고 사먹는 몰지각한 사람들을 비난하겠다. 그러면 미세먼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그런데 이토록 맛있는 녀석을 도대체 끊을 수 없다. 갑자기 환경부의 화려한 ‘전과’가 떠오른다. 환경 파괴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4대강 사업을 적극 옹호했던 집단 아니던가. 하마터면 그런 자들을 믿을 뻔했다. 구운 고등어를 맛나게 먹고 힘을 내어 미세먼지의 진짜 주범을 잡을 방도를 생각하는 게 낫겠다.

잠깐, 구운 고등어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대체 왜 나온 거지? 당장 내 연구실 바로 옆과 앞의 거대한 아파트 공사 현장을 보라. 집으로 가는 길옆에도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고, 학교 바로 앞의 엄청난 단지도 불과 몇해 전에 세워졌다. 내가 사는 곳 일대가 수년째 온통 공사판인데 먼지가 없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런데도 뜬금없이 가련한 고등어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내몰렸다. 혹시 건설사와 정부와 학자들이 자신들이 범한 미세먼지의 산업적 생산을 덮기 위해 공모한 거 아냐? 애꿎은 고등어가 속죄양이 된 거 아냐? 예전에 4대강 때에도 그렇게 잘 해먹었잖아. 그래, 고등어 주범설은 건설사 일당이 꾸며낸 가짜뉴스다.

미세먼지의 주범을 가리는 법정에서 고등어를 빼내려는 나를 혹자는 이렇게 평할 거다. 전상진은 인지부조화를 줄이려 절박하게 몸부림치는 중이다. 어떤 사람의 의견이 사실과 다를 때 느끼는 고통을 인지부조화라 한다. 그러한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사실에 맞게 생각을 바로잡는 것과 생각에 맞게 사실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 그들은 내가 두 번째 방법을 취했다고 말하겠지. 사실에 맞게 의견을 바꿔야 하는데(禁고등어) 내 기분에 맞게 사실을 왜곡하는 이상한 사람. 말하자면 나는 구운 고등어를 즐기는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고, 고등어가 미세먼지의 주범이 아니라는 가짜뉴스와 그 주범이 다른 곳에 있다는 음모론에 기대어 사실을 곡해하는 별종인 거다.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대부분은 진리와 사실보다 생활양식을 택한다. 플라스틱 공해가 심각하다. 코에 박힌 플라스틱 빨대로 괴로워하는 거북이 사진은 진정 충격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빨대를 사용한다. 빨대 없이 어떻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겠는가.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테이크를 즐기게 되면서 가축 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가축 산업은 기후변화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도 나는 스테이크를 포기할 수 없다. 나 하나쯤 그런다고 세상이 특별히 나빠지겠어. 게다가 고등어와 빨대와 스테이크가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잘나빠진 과학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절대적 진리가 없다는 게 과학의 핵심 명제 아니던가. 구운 고등어와 빨대 꽂힌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신선한 스테이크를 포기하는 대신 환경과 기후에 대한 내 의견을 기꺼이 바꾸겠다. 가짜뉴스 너무 욕하지 마시라. 그건 우리의 신성한 생활양식을 수호하는 진정한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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