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27 18:17
수정 : 2018.11.28 09:29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 경제는 자본주의의 디스토피아, 곧 안전하게 보호된 강자들의 착취 시스템으로 전락해버렸다.”
마르크스주의자의 주장이 아니다. 자유시장의 옹호자로 잘 알려진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위기에 직면한 자본주의라는 문제의식 위에 독과점 대기업들의 지배력 남용에 주목한 특집 기사 중 한 대목이다.
이 매체가 문제로 삼은 곳은 높은 생산성이 아니라 불공정 행위나 정부 보호에 힘입어 우월적 지위를 누려온 대기업들로, 카드·통신·제약·항공·군수업체가 대표적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기업’ 중에는 눈에 띄는 잠재적 경쟁 기업들을 인수해 시장 지배력을 굳히는 구글과 페이스북이 거론되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장기주의’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제시되는 대기업 측 개혁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이다. 그들이 사회 전체에 도움을 주게 하려면 정부정책의 틀을 만드는 데도 경영진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이윤의 더 많은 부분을 그들의 처분에 맡기도록 해야 한다는 게 핵심 주장인데,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강자들이 추구하는 일종의 ‘반시장주의’라고 본다. “자유시장을 존중하는 것”과 “시장 경쟁에서의 승자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구분하고, 이익이나 친목관계에 충성하지 않으며 옳다고 믿는 이념에 따라 판단하는 이 매체의 자세는, 기업과 시장을 동일시하는 우리의 ‘친시장주의 언론’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코노미스트>의 해법은 역시 ‘경쟁’이다. 기존 대기업과 정부의 유착관계를 끊고 신규 기업의 진입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소비자의 후생과 노동자의 교섭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경쟁은 자본가로부터 자본주의를 구한다.
그동안 진보는 경쟁에 부정적이었다.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루이 블랑은 “경쟁은 질병이고, 조합이 치료약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무분별하거나 소모적인 경쟁이 문제이지, 경쟁 그 자체는 삶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며 사회와 경제에 활력을 준다. 또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경쟁을 완화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진입 때는 경쟁이 지나치게 심하지만, 진입하고 나면 경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은 살인적인 경쟁에 내몰리지만, 희소한 자격증을 딴 사람들이나 대기업은 경쟁의 규율에서 자유롭다.
최근 불거진 비리 유치원이나 카드 수수료 문제도 기본적으로는 경쟁이 부족하고, 이용자들의 발언권이 반영되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경제 사업체들이 새로운 대안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들은 소비자-이용자-시민의 필요와 욕구를 온전히 충족시키는 데 목적을 두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운영원리로 삼는다. 구성원들의 내재적 동기에 기반하고 지역 공동체와 밀착돼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차별받지 않는 시장경쟁 환경에서 경영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기존 사업체들에 대한 ‘경쟁우위’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전한 식품을 먹기 위해 시작한 ‘생협’이 대형마트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했고,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마련하기 위한 ‘공동육아협동조합’이 국공립 유치원보다 높은 만족을 주는 상황까지 왔다. 협동조합은 자본의 횡포에 맞서기 위한 약자들의 자구책으로 출발해서 자본의 경쟁자로 도약했고 시장을 재편하는 힘도 발휘했다. 이제 사회적경제는 유력한 빈곤대책에 더해, 윤리적 소비자나 사려 깊은 시민들을 조직함으로써 당사자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은 물론 시장의 혁신을 주도하는 경쟁 해법으로도 자리매김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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