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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04 18:19 수정 : 2018.12.04 19:06

이원재
LAB2050 대표

장항 읍내는 을씨년스러웠다. ‘음식문화특화거리’에는 손님이 드물었다. 버려진 빈 가게 터도 눈에 띄었다. 간판들은 낡아가고 있었다. 5분 거리에 있는 국립생태원에 세계적 수준의 시설과 관람객이 가득 차 있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10여년 전, 충남 서천군에서 진행하는 ‘장항르네상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을 짓는 대신 국립생태원,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등을 지역에 유치하기로 결정한 시점이었다. 장항은 1930년대 제련소가 들어서고 1960년대 국제항이 열려 서해안 최대 산업도시가 됐던 곳이다. 그 모든 산업기반이 떠난 뒤 인구도 역동성도 쪼그라든 이곳을 재부흥하자는 야심 찬 기획이었다.

지역 연구자, 음식 전문가, 행정 관료들이 모여 새로운 도약을 꾀하는 전략을 연구했다. 생태, 연구, 관광이라는 열쇳말을 중심으로 생각을 펼쳐나갔다. 음식문화특화거리 조성 등을 포함해 전반적인 지역 재포지셔닝 전략이 나왔다. ‘도시재생’이 법제화되기 전의 도시재생 기획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뒤, 그 결과는 의문이다.

LAB2050이 최근 지역별 제조업 고용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내놓은 ‘우리 지역 고용위기 시그널’ 지도를 보다가, 그때를 다시 떠올려 성찰하게 됐다. 많은 지역이 규모와 양상은 다르지만 대체로 장항읍과 비슷한 과정을 겪어야 할 가능성이 보였다. 그런 과정을 장항보다 더 잘 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10월 방문했던 스페인의 도시 빌바오의 사례에 몇 가지 힌트가 있었다.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진행해야 한다. 빌바오는 과거 철강산업과 조선업 중심의 제조업 도시에서 문화 및 관광을 중심으로 전환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름다운 외관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대표적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구겐하임은 전체 그림의 일부일 뿐이었다. 도시 미관만 해도 그렇다. 구겐하임 이후 지하철 역사를 지으며 역 입구도 아름다운 미술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조선소 터와 철길이 차지하고 있던 강변은 아름다운 수변공원으로 변화시켰다. 축구 경기장을 다시 지으면서도 외관의 아름다움을 조율했다. 20여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일들이다.

도시는 한두건의 이벤트로 전환될 수 없다. 제조업 공장 중심으로 운영되던 도시를 문화와 지식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는 당연히 수십년이 걸린다. 장기 전략을 짜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주 바뀌는 정치지도자에게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교훈이다. 지역 발전 전략을 짜는 메트로폴리-30은 민간과 시청이 합작해 만든 기구다. 대학, 주요 공기업, 민간 기업 등이 주도하며 시청도 한 회원으로 참여한다. 여기서 모든 프로젝트를 기획하니 시장이 바뀌어도 일관성이 유지된다. 지역 주민 스스로 비용을 부담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오염된 강을 살리기 위한 수질개선 비용을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데 합의했다. 메트로폴리-30의 회비 중 절반은 민간이 스스로 부담한다.

정부가 도시재생에 적극적으로 예산을 풀기로 했다. 전환이 필요한 도시에 자원이 생겼다. 그런데 이런 예산은 임기가 정해진 지방정부의 치적 중심으로 운용되기 쉽다. 그래서는 거품 같은 건설 경기만 잠깐 남기고 사라지게 된다.

민간과 지방정부 사이의 단단한 협치, 오래 지속될 비전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 비전에 맞는 실험에 착수해야 한다. 제조업 고용이 위기를 맞은 우리에게는 어쩌면 수많은 빌바오가 필요하다. 재생을 넘어 근본적 전환을 기획해야 한다. 빌바오는 모든 주요 기업이 떠나고 실업률이 25%로 치솟는 고통을 맛보고서야 변화에 나섰다. 빨리 시작한다면 고통을 덜 겪을 수도 있다. 지금이 바로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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