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11 17:54
수정 : 2018.12.11 18:55
권김현영
여성학 연구자
30년 만의 기회라고 했던 개헌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선거제 개편 논의도 침몰 중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더불어한국당’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한 몸처럼 움직이며 기득권을 방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3당 대표는 한겨울 단식농성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예산안 통과를 민생법안으로 포장하고 선거구 개편을 국회의원 밥그릇 싸움이라며 홍보물까지 제작했다.
후안무치라는 고사성어가 자동으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개헌과 선거제 개편 모두 대통령의 일관된 의지가 표명된 핵심 공약이었고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주장해오던 바이다. 하지만 기득권 앞에 모두 주저없이 말을 바꾸었다. 민생 대 국회의원 밥그릇이라는 프레임을 짜고 싶었겠지만 디테일로 들어가면 기막힌 일이 한두개가 아니다.
달걀 한알로 수십명의 아이들이 먹을 국을 끓여내는 등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했던 사립유치원들의 전횡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었지만, 국비 지원에 대한 회계감사를 수용하라는 수준의 매우 상식적인 입법안조차 사립유치원과 자유한국당의 카르텔에 막혀 통과되지 못했다. 여성들의 신체와 사생활을 조각내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왔던 웹하드 카르텔이 만천하에 밝혀졌고 수사기관과 정치권의 공모마저 드러나고 있는 판이지만 이상하게도 거대 양당의 국회의원 누구도 적극적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기초연금을 받았다 뺏기는’ 기초생활수급 노인에게 매달 10만원을 주겠다던 방안이 결국 무산되었고, 산모에게 지급하기로 한 출산장려금 계획도 백지화되었다. 청년일자리 지원을 위한 예산을 비롯하여 일자리 예산은 4천억원가량이 줄었으며 식량주권과 관련된 농업소득 보전예산은 3242억원 감액되었다.
반면 기득권은 꼼꼼하게도 챙겨 갔다. 국회 특활비를 폐지했더니 교섭단체 지원금을 64% 더 올려, 결과적으로 없어진 특활비보다 더 많이 확보했고, 그마저도 비교섭단체 정책지원비는 정부안보다 3억5200만원 감액하는 등 국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여야 원내대표 등의 지역구 관련 예산은 무려 증액되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국립세종수목원 조성 자금은 정부안 303억원에서 253억원이 더 늘었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 안상수 예결위 위원장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한몫 단단히 챙겼다는 평을 듣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양당 체제가 바로 우리 사회의 적폐라는 것을 이번만큼 완벽히 증명한 국회도 없는 듯하다. 아, 물론 이 와중에 기쁨을 누리는 이들은 또 있다. 위기일수록 이념과 관계없이 기득권들의 카르텔은 강고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는 듯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장 폐지의 위기를 넘겨 거래가 재개되었다. 대기업부터 살리고 기득권부터 챙기는 일은 <국가부도의 날> 같은 영화 속 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진행 중이다.
그러니 부디 적폐청산을 위해 우리 당에 힘을 집중시켜달라는 거대 양당은 그 입을 다물라. 2018년의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대상은 군사독재가 아니라 대기업 중심, 다수당 독식 중심의 1987년 체제이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굳어진 신자유주의 체제다. 박근혜 탄핵 이후 이 시대가 해결해야 할 적폐가 산적해 있다. 사법개혁도, 시장주의마저 거스르는 재벌공화국의 전횡도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적폐청산의 가장 큰 걸림돌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는 이제 분명히 알겠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양당 기득권 카르텔을 해체하는 정치개혁 없이는 어떤 적폐청산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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