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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3 18:26 수정 : 2018.12.24 13:23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순식간에 일어났어요. 준비할 시간도 없었어요. 저희 동네 집들은 전부 물에 잠겼어요. 제 식구 중 네명이 실종상태고,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아직 아는 게 없어요.”

댐이 무너졌다. 건설되고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댐이었다. 약 50억톤의 물이 댐 아래를 덮쳐 최소 70여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고, 약 1만명의 사람이 집을 잃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책임지고 사과하는 이도 없고 5개월이 지나도록 참사의 원인도, 그에 대한 책임도 공식적으로는 전혀 밝혀진 것이 없다.

지난 7월 말 발생한 라오스 소재 세피안-세남노이 댐 보조댐 사고 이야기다. 한국 회사인 에스케이(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의 지분이 50%가 넘는 회사가 세피안-세남노이 댐 건설의 발주처고 에스케이건설이 시공사다. 세피안-세남노이 댐 건설 사업 총투자금의 약 8%는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유상원조다. 라오스 정부와 한국 정부, 그리고 에스케이건설 등이 이 참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참사 당일부터 부정확한 사망·실종자 통계, 부실한 공사, 대피 지연과 관련된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라오스 정부는 부총리를 포함한 정부 인사, 관련 전문가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진실 추구는 “고통을 표현하고자 하는 개개인의 참여”를 요구하기 때문에 조사위원회 구성에 시민사회, 특히 피해자 단체가 적절하게 대표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위원회 구성과 활동에 이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있고, 구성의 독립성과 활동의 공정성, 투명성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2006년 한 유엔 보고서에 의하면 “진실에 대한 권리”는 “인권 침해의 이유와 침해가 발생한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을 포함하여 발생한 사건에 대한 완전하고 완벽한 진실, 사건의 구체적 상황, 그리고 누가 사건에 관여했는지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에 대한 권리는 효과적인 조사, 구제와 배상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 그리고 이런 국가의 의무와 관련된 피해자의 권리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보장과 실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우면산 산사태 등 일련의 참사에 대하여 한국 정부와 법원은 부실한 설계, 건설, 감독, 유지·관리, 대피의 방기 등과 관련된 진상을 규명하고 국가, 지자체, 기업 및 그 관련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확인했다. 단지 외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서 사실 관계와 책임 소재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할 정부의 의무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법적으로도 국제사법에 의해 라오스 피해자들의 한국 내 손해배상 소송이 가능하고, 형법에 의해 한국인의 외국에서의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

곧 발표될 라오스 정부의 조사 결과가 ‘폭우’에 대한 과도한 평가 등 진실과는 거리가 먼 내용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런 상황인데도 진상 규명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는 아무런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에스케이건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사실들을 제시하며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건 발생지가 외국이라는 점, 피해자가 외국인이라는 점, 라오스가 매우 폐쇄적인 국가라는 점 등에 기대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국내에서 끊이지 않는 안전사고와 참사로도 부족해 한국발 안전불감증, 참사 원인의 은폐, 책임의 회피·면제 등의 폐습을 국제화(?)하는 한국 정부나 기업이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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