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26 18:48
수정 : 2018.12.26 18:58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나의 할머니는 1919년생이다. 살아 계신다면 꼭 백살이 되셨을 것이다. 오래전 할머니와 생애사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할머니가 당신이 살아온 시대를 나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할머니가 회고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광복이나 육이오가 아니라 사라호 태풍이었다.
게다가 할머니는 어떤 해를 간지로만 기억할 뿐 서기로 몇년인지 잘 모르셨다. 간지에서는 동일한 해의 이름이 60년마다 반복된다. 사라호 태풍이 온 해를 기해년으로만 기억하고 있으면 그 해가 어느 기해년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곧 간지가 기억의 지평을 자신의 생애 이상으로 확대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유용한 좌표임을 깨달았다. 인생은 60년이 고작이므로, 해의 이름은 60개로 충분하다.
반면 ‘역사’를 기억하려는 의지로 충만한 우리는 모든 해에 고유한 이름을 부여하기 위해 그것들을 숫자로 부른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연도를 기억하는 것, 1789나 1917 같은 숫자를 외우는 것은 그러므로 결코 무의미한 행위가 아니다. 연도는 바로 해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의욕적인 교사가 자기 반 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려고 애쓰는 것처럼, 역사학자는 자신이 다루는 해들의 이름을 가능한 한 많이 기억하려고 한다. 일단 이름을 기억하면 그 해의 얼굴을 이루는 여러 특징을 거기 연결할 수 있다.
1905년을 예로 들어보자. 이해는 을사조약의 해이자, 러시아에서 ‘피의 일요일’이 있었던 해이다. 언뜻 무관해 보이는 이 두 사건은 러일전쟁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한다. 그리고 패배한 러시아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에이젠시테인의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포킨 반란은 러시아의 패색이 짙어진 가운데 일어난 것이다. 1905년 혁명은 레온 트로츠키라는 이름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1879년생인 트로츠키는 26살의 나이로 이 혁명을 진두지휘하면서 단번에 역사의 주역이 된다. 그런데 1905년은 과학사에서도 혁명적인 해였다. 이해에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비롯한 세편의 중요한 논문을 한꺼번에 발표한다. 우연하게도 아인슈타인은 트로츠키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1905년의 얼굴을 이렇게 스케치하고 나면, 우리는 1907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도착한 이상설의 심경을 더 잘 상상할 수 있다. 이상설은 천재적인 수학자였다. 그는 헤이그의 카페에서 두해 전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논문의 의미에 대해 유럽의 동료들과 토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그는 5개 국어에 능통했다). 그러나 그것은 망국의 백성에게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7년 러시아 땅에서 눈을 감는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쓰는 이유는 무슨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따위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김제동이 러시아 혁명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무심결에 드러냈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 좋은 예이다(대부분 그의 무지가 아니라 겸손하지 못한 ‘태도’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러시아사를 전혀 모르면 한국 근대사 역시 제대로 알 수 없다. 지식 교육을 경시하는 이른바 진보적인 교육자들은 세계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없이(을사조약이 아니라 을사늑약이라는 식으로) ‘비분강개’만을 가르치는 지금과 같은 역사교육은 국수주의를 낳을 뿐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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