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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01 18:42 수정 : 2019.01.02 09:27

이원재
LAB2050 대표

‘하얀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우리 경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토론할 때마다 등장하곤 하는, 의도는 옳으나 진실이 아닌 이야기들에 종종 불편했다.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기 위해 듣기 좋은 근거를 덧붙인 주장들인데, 시간이 지나며 도그마가 되어 문제 해결의 발목을 잡는다. 정부와 야당 사이, 보수와 진보 사이 논쟁이 커질수록 더 강화된다. 이런 것들이다.

1. 규제를 없애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규제완화론의 핵심 논리다. 기업을 풀어주면 일자리가 늘어나며 개인들의 소득이 커진다는 낙수효과론은 오류로 판명난 지 오래다. 지난 수년 동안 경제 전체는 꾸준히 성장했지만, 지속적으로 의미 있게 늘어난 일자리는 정부가 주도해 만든 사회복지서비스 영역뿐이다. 경제성장은 이제 저절로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신산업 스타트업을 키우기 위해 벽을 낮추자는 선의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노동집약적 경제성장 시대는 지났다. 어떻든 기업은 가능하면 고용하지 않고 돈을 벌 방법을 찾을 것이다. 신산업일수록 더 그럴 수 있다. 신산업과 스타트업을 옹호하려는 사람이라면, ‘규제완화로 이익이 나면 국가가 더 많이 거두어 분배해야 한다’고 함께 주장해야 사리에 맞는다.

2. 소득이 늘어나면 경제가 성장한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논리다. 분배정의를 실현하자는 선의는 백배 공감한다. 소득 불평등은 지나치게 커졌다. 바로잡아야 한다. 소득이 안정되면 혁신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소득 증대만으로 경제가 성장하지는 않는다. 기업가 정신과 연구개발 투자 등 별도의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

성장은 성장이고 분배는 분배다. 최악의 경우 성장하지 않더라도 분배는 중요하다. 적정한 소득은 사람의 존엄한 삶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소득 증대는 경제사회정책의 목적이다. 국가의 경제성장은 그 수단이다.

3. 혁신으로 좋은 일자리를 늘린다?

스마트공장의 혁신이 일자리를 늘린다는 이야기를 정부가 나서서 하기도 한다. 그런데 스마트공장은 공정을 효율화하는 기술이다. 즉 사람의 투입을 줄이는 게 목적이다. 혁신으로 기술인력이 늘더라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이고, 혁신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차지할 고용이다.

설령 고용이 줄더라도 혁신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사람이 노동을 통해 짊어져야 하는 위험과 노고, 그리고 생산 비용을 줄인다. 혁신이 만든 부가가치를 밀려난 사람들과 나누어 갖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

4. 출산율을 높여 인구를 늘려 경제를 살리자?

물론 출산과 육아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지난 십수년 동안 출산을 장려한다며 강화한 다양한 복지정책, 노동정책 역시 모두 최소한의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저출산이 한 세대 이상 이어지면서, 이제 출산율을 아무리 높여도 인구감소의 길을 돌이킬 수 없는 구조가 됐다. 고령사회, 인구감소 시대를 더 행복하게 맞을 수 있는 경제를 설계해야 한다. 출산장려와 인구확충 대신, 개인의 삶의 질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5. 대-중소기업 공정거래가 이뤄지면 한국 경제가 살아난다?

공정거래는 ‘정의’의 차원에서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낮은 데 있다. ‘중소기업 살리기’ 대신 ‘중소기업 강하게 만들기’로 전환하는 게 맞는다. 중소기업 보호 대신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호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는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좋은 말, 겉치레는 생략해도 된다. 용기 있게 진실을 직면하며 토론할 때가 됐다. 새해에는 하얀 거짓말과 작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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