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03 18:29
수정 : 2019.01.04 09:27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
올해는 베이비붐 세대가 생산가능인구(15~64살)에서 탈락하기 시작하는 해이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는 1955년부터 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2017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고, 올해 감소폭은 10만명 정도이지만 내년부터 30만명을 웃돌게 되어 10년 안에 300만명 이상 줄어드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생산가능인구 중에서도 25~49살 또는 25~54살을 핵심노동인구라 부르는데, 이 기준의 인구는 2010년에서 2012년 사이에 정점을 찍고 감소하기 시작했다. 의욕 넘치고 생산성이 높으며 소비도 많이 하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수가 이미 8~9년 전부터 줄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사이에 외국인이 들어와서 일도 하고 소비도 한 탓에 사람이 부족한 것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올해나 내년부터는 인구구조 변화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본격적으로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인구구조가 이렇게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 정치인, 정책 당국자, 오피니언 리더들은 대부분 수도권에 거주하고, 젊은이들도 기회만 있으면 서울과 수도권으로 오려고 하니 문제 해결이 어렵다. 수도권에 집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치고 경제학자들은 그 흔한 공급 부족의 논리를 대며 집을 더 지어야 한다고 하는데, 결국 수요가 몰리는 수도권에 더 짓자는 것이다. 정부도 할 수 없이 더 짓기로 했다.
앞으로 전체 인구는 감소하지만 수도권 인구 비중은 더 올라가는 현상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대학별 입학정원을 그대로 놔두면 수도권 소재 대학생의 비중은 더 올라간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에서 학업과 취업 기회가 줄어든 청년들은 서울과 수도권으로 더 모이게 될 것이다. 수도권에서 대학을 다닌 청년들은 졸업 후에도 계속 수도권에 머무르고 싶어 하고, 생활비가 비싸더라도 결혼만 안 하면 그럭저럭 버티면서 살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경기가 나빠져도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 일감이 있기 때문이다.
경쟁과 밀도가 높아지면 사람들 스스로 그곳에서 빠져나오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중앙집권의 오랜 역사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그런 힘이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적응력이 뛰어난 한국인들은 결혼과 출산이 가져올 경제적 곤란과 불확실한 미래를 회피하면서, 개인적 취미 활동, 여행,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데이트, 지인들과의 교류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길을 택하고 있다.
여러모로 우리 사회는 구조 전환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올해에도 정치권과 미디어는 좁은 의미의 ‘경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내걸고 있는 경제 프레임은 사실상 성장 프레임이다. 언급한 대로 한국 경제는 인구구조 하나만으로도 이미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핵심노동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는데다 기업도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흔히 성장을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국내총생산(GDP)에 대비하여 우리나라만큼 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는 없다.
앞으로 성장률은 계속 조금씩 떨어질 것이다. 이걸 인정해야 경제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 이상 한강의 기적은 없다.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보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을 훨씬 더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멀리 내다보고 젊은 세대부터 챙기고 지역부터 챙겨야 한다. 이제 고도성장에 대한 추억과 미련에서 벗어나자. 그나마 2%대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을 때 재정 여력을 활용해서 사회의 재생과 재건을 위한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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