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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09 18:08 수정 : 2019.01.10 09:41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소장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자신에게 진료를 받던 환자에게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는 어이없다고 혀를 차고, 어떤 이는 예고된 사고라 말한다. 의료진이 폭력 피해자가 된 일이 여러 번 있었으니 예고라는 표현이 무리는 아니다. 만성 정신질환이나 장애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때 위험이 뒤따른다는 경고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이런 사고 이후의 반응도 대체로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상당 부분 과장이고 오해라는 것이 명확한데도, 왜곡과 선입관은 흔히 정신질환이나 장애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방향으로 치우친다. 오죽하면 간단한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실도 쉽게 드러내기 어려울까.

이번에는 좀 달랐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고백하건대, 도를 넘는 혐오와 배제 논리가 득세하리란 예상이 빗나갔다. 고인의 평소 생각을 그대로 전달했을 가족들의 당부,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방향 잡기가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꼭 이번 일이 아니어도 정신보건이 지향할 방향은 명료하다. 정신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이들을 분리하고 칸막이를 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치료하고 삶의 능력을 키워 품위 있는 생활을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기본이다. 당연히 시스템이 뒤를 받쳐야 한다. 예를 들어, 병원 밖 지역사회에 제대로 된 치료와 재활 체계를 갖추고, 급성-만성, 예방-치료-재활, 의료-복지-생활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

문제이자 과제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다. 그동안의 경과를 보거나, 전문가의 지식과 판단을 따르거나, 해야 할 일은 크게 이견이 없다. 국가와 사회의 노력이 더디고 약한 것은 할 일을 몰라서가 아니라 동기와 압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정신건강 관리시스템을 만든다고 했으니(1995년에 제정된 ‘정신보건법’을 공식 출발이라 볼 때), 이 이유가 아니면 20년 이상 지지부진한 경과를 설명하기 어렵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대오각성하라고 주문하면 충분할까. 나는 정신보건 체계가 부실한 사태야말로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 판단한다. 정신건강, 그중에서도 정신질환이나 정신장애에 돈과 사람과 노력을 쓰려면 사회적 우선순위가 그만큼 높아야 한다. 지금 이해 당사자의 대표성은 허약하고 정치적 압력은 좀처럼 만들어지기 어려우니,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의 한계 또는 기능 마비.

이해관계의 대표성을 넘어 새로운 힘의 기반을 만들어야 건전한 정신보건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더 깊은 민주주의 또는 더 좋은 정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신건강과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은 이미 확립되어 정치를 지원할 터,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적 가치와 시민성에 기초한 대안적 대표성과 이에 기초한 힘을 키워야 모든 우선순위가 바뀐다.

새 정치적 주체는 정신건강과 삶의 질이 마땅히 노력할 만한 가치임을 설득해야 한다. 환자와 가족, 뜻을 같이하는 시민과 정치인, 전문가가 만들 연대는 이해관계가 아니라 가치, 그중에서도 인권과 건강권을 중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 건강권이란 누구나 경제적 부담 능력에 무관하게 품위 있는 삶을 살 권리를 뜻한다.

‘건강권의 정치’는 이념의 기틀을 만들고 그 지향을 옹호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돈과 이익을 앞세우는 모든 것의 ‘경제화’가 가장 중요한 장애물이면, 어떻게 이를 넘어설 수 있는지 가치를 혁신하는 것이 중심 과제다. 좋은 정치가 뒤집힌 삶과 가치를 뒤집어 바로 세우는 역할을 감당해야 함을 절감한다. 마침, 정신보건에서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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