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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23 18:22 수정 : 2019.01.25 21:12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데이미언 허스트는 현대 미술의 거장이다. 수천개의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해골이나 수조 안에 전시된 상어 같은, 기괴하고 매혹적인 작품들로 유명하다. 그의 손길이 닿은 것이면 작은 종잇조각도 비싸게 팔린다. 어느 날 데이미언 허스트가 방송국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가는 길에 그는 운전사에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어린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종잇조각에 상어 한마리를 휘갈겨 그린 후, 아들을 위한 선물이라면서 운전사에게 주었다. 몇년 뒤 이 종이는 경매에 부쳐졌고 5천파운드(약 730만원)에 팔렸다. 종이의 주인인 소년은 그 돈을 학비에 보태겠다고 말했다.

데이미언 허스트가 명성을 얻은 데는 광고재벌이자 미술계의 큰손이던 찰스 사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1988년 아직 대학생이던 데이미언 허스트는 템스강변의 버려진 건물에서 친구들과 ‘프리즈’(Freeze)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여는데, 사치와의 인연은 여기서 시작된다. 사치는 그때까지 미국의 유명작가 위주로 미술품을 수집하고 있었는데, 이 전시회에서 깊은 인상을 받고 영국의 청년 예술가들을 후원하기로 마음먹는다. 사치는 데이미언 허스트를 비롯한 몇몇 작가를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로 소개하면서, 전시회를 열어주고 그들의 작품을 비싼 값에 사들인다. 와이비에이의 등장은 현대 미술의 풍경을 크게 바꾸어놓았을 뿐 아니라, 그때까지 변방으로 취급되던 런던을 파리나 뉴욕에 맞먹는 예술의 수도로 만들었다.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중에서도 데이미언 허스트는 특히 사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데이미언 허스트를 현대 미술의 떠오르는 별로 각인시킨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포름알데히드를 채운 수조 안에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전시된 상어)은 사치가 제작비를 대주어서 만든 것이다. 물론 사치도 이 과정에서 돈을 벌었다. 그는 5만파운드를 주고 주문 제작한 이 작품을 나중에 800만파운드에 팔았다.

손혜원 의원이 목포에 세우려고 하는 나전칠기 박물관(혹은 갤러리 겸 공방)을 둘러싸고 며칠째 시끌시끌하다. 이 와중에 데이미언 허스트가 구입한 ‘조약돌’들이 새삼 거론되고 있다. ‘조약돌’은 돌멩이 모양에 전통 기법으로 나전을 입힌 작품이다. 나전 공예라는 말을 들으면 장롱이나 반상 정도만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전통 공예에 내재된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 보이는 걸작이다. 작가는 황삼용 장인이지만, 오롯이 그의 솜씨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형태를 만드는 작가, 옻칠 작가, 삼차원 도면을 그리는 작가가 따로 있는, 협업의 산물이라고 한다. 기획자는 손혜원이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조약돌 연작이 2015년 런던 사치 갤러리에 전시되었을 때 두점을 사 갔고, 2017년 스위스 바젤의 아트 페어에서도 두점을 또 구입하여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언론은 나전 공예의 잠재력에 주목하기보다는 손혜원 의원이 이런 ‘장사’로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 따지기에 급급하다. 안목이 있는 컬렉터와 전시기획자는 예술의 후원자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들과 작가들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예술가들에게 의견을 물어야 할 문제이지, 문외한이 이러쿵저러쿵할 일이 아니다. 나는 찰스 사치가 영국 현대 미술을 위해서 한 일을 손 의원이 우리 전통 공예를 위해 해줄 거라고 믿는다. 그녀가 이런 논란에 너무 상처받지 말고 오랜 꿈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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