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27 17:58
수정 : 2019.01.28 13:19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언제부턴가 정치가 풀어야 할 문제를 사법에 맡기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다. 정치와 사법의 역할이 뒤섞이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와 사법의 문제 해결 방식이 서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들이 타협되고 조정되는 과정이다. 반면 사법에서는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한정된 법적 논점을 놓고 합법·불법이 가려진다. 이 역할 구분이 붕괴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신 전 사무관 사건도 결국 기획재정부가 그를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고발하는 사태로 치달았다. 사법이 공을 넘겨받았지만 문제는 더 꼬였다. 사법의 관심은 오로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의 입증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본질이 ‘비밀누설’의 형사처벌 여부였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 폭로 내용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좀 흐르자 국가 재정 운용이나 청와대와 행정관료의 역할 분담 등에 대한 유의미한 논점들이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조사실과 법정은 그러한 문제들을 토론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무죄 판결이 내려진다고 한들 제보의 정당성이 보증되는 것은 아니다. 법이 무죄라고 선언해도 이런 식의 폭로가 적절한 것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손 의원 사건도 결국 고발전으로 귀결되고 있다. 공무상 비밀누설, 직권남용,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가 거론된다. 실제로 처벌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그 이전에 이러한 혐의가 우리가 풀어야 할 핵심적인 문제였는지 의문이다. 이 사건이 던진 중요한 쟁점은 국회의원이 특정 지역에 대해 투자한 뒤 그와 관련한 의정활동을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점에 있다. 아직 한국 사회에는 낯선 개념인 ‘이익충돌’의 문제다. 다행히 시간이 좀 흐르자 이익충돌 문제에 관한 논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국회의원이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는 주장도 있었고, 이익 조정을 해야 하는 국회의원 직무 성격을 고려할 때 이익충돌 금지 원칙을 과도하게 적용하면 안 된다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김영란법 제정 시 배제되었던 이익충돌 금지 문제를 다시 토론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나름 생산적인 논의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고발전은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법으로 다뤄질 수 있는 논점으로만 논의가 제한되고 합법·불법의 이분법이 부각된다. 유죄가 나오건 무죄가 나오건 전체적인 행위의 정당성이 규명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손 의원 측에서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사 고발도 마찬가지다. 언론사가 처벌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언론사의 명예훼손 혐의 유무죄와 무관하게, 과연 이런 보도 방식이 적절했는지는 별도로 토론되어야 할 중요한 주제다.
최악의 경우의 수가 남아 있다. 수사나 재판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검찰과 법원을 부당하게 비난하는 경우다. 만약 관련 혐의를 받은 이들이 무죄가 나온다면 고발을 주도한 자들은 “법원이 면죄부를 줬다”고 비난할 것이다. 법원은 그저 비밀누설, 부동산실명법 위반, 명예훼손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뿐인데 말이다.
정치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꾸 사법에 의존한다면 정치는 왜소해지고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사건만 터지면 검찰과 법원에 달려가는 오래된 악습을 버려야 한다. 정치와 법이 단절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치가 사법의 힘을 빌려야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그때를 위해 법을 아껴두어야 한다. 법은 아껴 쓸 때 빛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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