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28 18:13
수정 : 2019.01.29 09:51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민화협 정책위원장
2019년 벽두부터 김정은 위원장이 ‘다자협상’을 제기했다. 신년사에서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연계하에 다자협상을 적극 추진해 항구적인 평화보장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하더니 1월8일 북-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의 다자논의’를 거론했다. 북핵문제 논의가 올해는 작년과는 좀 다른 구도로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중 정상회담에서 ‘다자논의’가 언급된 것은 한반도 문제 협상장에 중국이 들어온다는 얘기고, 2019년에는 북핵문제뿐 아니라 평화체제 논의도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과 김 위원장의 ‘다자협상’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과제로 향후 우리 통일외교안보팀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6·12 싱가포르 북-미 3대 합의(북미관계-평화체제-비핵화)가 반년 이상 비핵화 문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미국의 대북 압박과 제재가 계속되었던 것이 답답했을 것이다. 중국을 끌어들이고 다자협상으로 판을 키워서 북핵문제와 평화체제를 연계하겠다는 것이 신년사의 ‘새로운 길’인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1년 동안 애써서 차려놓은 ‘남-북-미’ 3자 구도 밥상에 중국은 숟가락을 얹게 되었다.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이 무척 고마울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서 ‘차이나 패싱’을 벗어날 수 있고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서 중국의 지분을 높이게 되었다. 반면 북-중 밀착으로 한국과 미국은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역으로 북-중 밀착이 북-미 협상을 가속화하고 향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평화도 그만큼 빨리 올 수 있다. 그러나 미-중이 남중국해까지 판을 확대해서 동아시아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북-중 밀착이 북미관계 개선-평화체제 구축-비핵화에 꼭 도움이 되리란 보장은 없다. 북한으로서는 북-중 관계를 북-미 관계에 레버리지로 활용해서 북한의 외교적 입지를 일시적이나마 넓히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2017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문 대통령이 견지해온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 프로세스가 순조롭게 진행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한반도 운전자론’도 빛을 잃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가 남북간 전략적 소통의 한해였다면 올해는 우리 스스로 북한보다 더 적극적으로 미·중을 비롯한 주변국들과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반도 문제 논의의 핵심은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다. 남북이 주도해서 풀어나가야 할 문제임에도 중국이 미국 핑계를 대면서 가세하려 한다.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국제정치도 역시 생물이다. 지난해 한국의 중재로 북-미 정상회담까지 했던 북한이 올해 변했다고 해서 그들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지난해 6월 이후 미국이 북한의 선 행동만을 요구한 측면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초부터 북한이 중국을 한반도 문제에 끌어들임으로써 향후 한반도 문제는 상당히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게 되었다.
연초 김정은 위원장의 다자협상과 방중을 뒤집어 해석하면, 미국의 일방적인 대북 협상 전략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끌어들이기는 하지만, 한반도 문제 해결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결국 미국과 말이 통하는 한국이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연계하여 풀어가달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남북-한미-북중-북미의 고차방정식이기는 하지만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에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승객이 더 많아진 차의 운전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 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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