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24 18:28
수정 : 2019.02.25 13:57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궁금하다. 작년 8월 법무부에 의해 공표된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은 어디에 있나. 소관부처 법무부 누리집에서도 과거 공지사항을 뒤져야만 그 전문을 찾을 수 있다. 소관국인 인권국의 기존 누리집은 없어졌다. 국가인권정책협의회, 법무부 인권정책자문단 회의가 열렸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이 기본계획이 인권정책의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내용이 고쳐져야 하고 얼마나 실질적인 절차가 필요한지 고민하고 실행하는 담당자가 있기는 한가.
2013년 법무부와 국가인권위가 (국가)인권(정책)기본법안 논의를 추진하다 중단했다. 2017년 국가인권위가 수차례 전문가, 시민사회 간담회를 주최하며 법안을 추진하다가 법무부와 협의한다더니 감감무소식이다. 법무부와 국가인권위의 주도권 다툼, 기싸움인가. 인권정책 수립, 국제인권규범 준수, 인권영향평가, 인권교육 등 인권보호 제도화에 있어 핵심적인 내용을 담을 이 법안의 의의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럴 수는 없다.
현 정부 대통령 임기 3분의 1이 지났다. 역사는 현 정부의 ‘인권’ 관련 공과로 무엇을 기억할까. 물론 ‘적폐 청산’이 있었다. 진정성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과거 정부의 인권침해 일부를 근근이 부분적으로 되돌려놓은 것에 불과했다. 현재 상태가 지속된다면 역사가 현 정부에 대해서는 정부의 묵인과 조장하에 이루어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역사를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는 과거 정부에서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로 분류되고 유지되어온 ‘성적 소수자’를 삭제했다. 성소수자를 주요 사회적 소수자 집단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현 정부는 단지 성적 지향 또는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하라는 유엔자유권위원회의 권고를 거부했다. 이 위원회에서도 이러한 한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 후속조치 평가의 최하등급인 ‘E’를 부여했다. 차별하지 않겠다는 말조차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권의 후퇴, 성소수자의 인권을 과거 정권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역사적 폭거였다.
‘국민이 우선이다’를 내세운 난민법 폐지 국민청원에 대해 청와대와 법무부는 ‘국민 안전이 최우선’ ‘허위난민 막기’로 답했다. 작년 11월 국회가 난민 예산을 통과시킬 때 법무부는 난민예산은 사실상 난민을 위한 예산이 아니라 난민을 “막기 위한, 더 줄이기 위한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오로지 난민을 막기 위해 고문방지협약 규정에도 정면으로 반하고, 난민협약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 법안을 논의 중이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예멘 난민 상황으로 “악화된 혐오 발언, 인종혐오 선동, 인종적 우월성에 관한 관념의 전파, … 대중매체에서 표현된 인종적 고정관념의 증가”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역사적 역주행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차별과 혐오가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정부도 사회적 약자를 포함해…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대통령의 작년 세계 인권의 날 기념식 축사다. 그러나 인권 비전과 정책을 위한 컨트롤타워, 조직과 내용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강한 의지와 계획이 없으면 현실은 변화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발언처럼 “인권을 무시할 때 야만의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는 미래지향성, 실행력이 보장된 인권의 비전과 정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현 상태가 계속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반동의 시대는 온다. 아니 이미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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