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3.05 18:30 수정 : 2019.03.06 09:38

이원재
LAB2050 대표

‘모든’이라는 한 단어가 모든 사람을 들끓게 했다.

최근 우리 연구소가 서울연구원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청년 기본소득 정책실험 모형을 연구했다. 2년 동안 1600명에게 시험삼아 지급한 뒤 그 효과를 평가해 보는 모델인데, 궁극적으로 조건 없이 ‘모든’ 청년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기본소득형 제도를 염두에 두었다. 구직과 소득 조건을 따져 선별적으로 지급하는 기존 청년수당 등의 제도와 방향이 다르다.

반응은 뜨거웠다. ‘청년들에게 투자해야 미래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금수저에게 왜 수당을 지급하느냐’ ‘일하지 않는 청년에게 왜 지급하느냐’ 같은 다양한 비판도 쏟아져 나왔다.

최근 통계청의 2018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 하위 20% 계층의 소득 감소가 나타난 뒤에도, 많은 이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집중한 선별복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모든’ 이에게 지급하는 복지가 빈곤층을 더 어렵게 한다고 주장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사람을 가려 지급하는 선별복지는 현실적으로는 심각한 문제를 여럿 담고 있다.

첫째, 받는 사람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다. 수혜자는 스스로 가난을 입증해야 하고, 공무원은 속이지 않는지 의심하고 검증해야 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모든 아이들에게 주는 무상급식은 모두의 권리가 되지만, 일부 아이들에게 주는 무상급식은 가난해서 얻어먹는 공짜 밥이 되어버린다.

이 문제는 이제 심리적 차원을 넘어서서 시스템 차원으로 번지고 있다. 2015년 이후 정부는 단전, 단수, 가스공급 중단, 건강보험료 체납 등 14개 공공기관의 27개 정보를 모아서 개인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게 됐다. 복지 사각지대를 없앤다는 명목에서 하는 일이지만, 가난을 입증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모두 내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기도 하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나왔던, 개인정보를 통해 범죄를 저지를 사람을 미리 알아내 잡아들이는 미래 경찰의 모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둘째, 선별 과정에서 생기는 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복지 대상자를 찾는 공무원도 있어야 하고, 자신의 상황을 속여 급여를 타가는 수혜자를 잡아내는 공무원도 있어야 한다. 급여를 받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경제 상황을 입증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지난해 아동수당 도입 과정에서, 상위 10% 소득 가구를 선별하는 데 드는 비용이 그 가구들에 그냥 지급하는 데 드는 비용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셋째, 정확하게 선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끊임없이 사각지대가 나온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도, 지난해 증평 모녀 사건도 이런 사각지대가 낳은 결과다. 그러니 공정하다는 신뢰를 얻기도 어렵다.

길게 보아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인층이 늘어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66~75살 가구의 경우 절반이, 76살 이상 가구는 4분의 3이 소득 하위 20% 계층에 속한다.

노인은 모두 가난하다. 그런데 그중 더 가난한 계층을 찾아 선별적으로 급여를 지급하면, 복지 급여 수급자가 소득 기준으로는 더 부유한 역전현상도 예상된다. 기초생활 수급자도 그렇지만, 기초연금도 소득 하위 30%와 소득 상위 70%를 가려 액수를 달리 지급하는 현재 구조에서는 갈등이 심각해질 것이다.

어려운 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두가 똑같이 나누어 받되 많이 벌면 많이 내도록 하는 것이다. 어렵더라도 그 방향으로 가야 사회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다. 국민들이 ‘많이 거두어 많이 나눠주자’는 원칙에 합의만 하면 된다. 선별복지의 낮은 길 대신, 이미 닦아놓은 보편복지의 높은 길을 담대하게 가보면 어떨까.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