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13 18:12
수정 : 2019.03.14 13:01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즈음해서 학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술을 원치 않는 학생에게 권하는 것은 형법상 강요 행위에 해당될 수 있으니 금지하도록 지도해달라는 당부였다. 담배 피우고 싶은 사람이 흡연구역을 찾듯, 특정 지역을 정해서 원하는 사람만 음주를 하도록 유도해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만취 후의 꼴불견은 줄어야 마땅하다. 술 취한 선배가 막걸리를 분수처럼 뿜어대던 장면은 이십여년이 지나도 여전히 불쾌하다. 하지만 “선후배 간 위계가 존재”해서 술을 강권하는 행위가 “법적 책임”의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 술자리를 싫어하는 학생들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음을 주지시켜달라는 당부는 다소 낯설었다. 누군가의 관행이 다른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여겨질 수 있음을 고맙게 환기해 주었지만, 동시에 이 지침을 모른 채 분위기를 띄운답시고 “원샷”을 외친 학생이 법적 공방에 휘말릴 장면을 상상하니 움찔했다.
어쨌든 오리엔테이션은 별 탈 없이 끝났고 개학을 맞았다. 메일 박스에는 학교 성평등 상담소에서 보내준 <교원을 위한 성폭력 위기 대응 매뉴얼>이 들어 있다. 성폭력 개념과 법제도, 각종 용어와 사례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수업시간에 학생의 행동을 통해 성폭력 피해 가능성을 인지하는 방법에서부터 사건 관련 면담 요청이 왔을 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할지 상세히 적어 놓았다. 미리 알았으면 좋았겠단 자책이 든다. 위로의 말은 사람에 따라 결이 달라, 공감을 표현하려 건넨 언어가 피해자에게 상처가 될 여지도 많기 때문이다. 한 줄씩 읽어가며 안도감을 느꼈고, 매뉴얼이 고맙기까지 했다.
그런데 한편에선 매뉴얼에 적힌 설명을 교수들이 얼마나 충분히 이해했을까 궁금하다. 전태일의 분신 이후 노동 관련 법률과 제도가 한국 사회에 부분적이나마 자리잡기까지 반세기가 흘렀다. 그럼에도 파업을 왜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미투 이후 한국의 여성운동이 이뤄낸 제도와 일상의 커다란 변화는 그런 점에서 놀랍고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 운동 속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한 논의가 짧은 시간에 모두에게 규범적 힘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불화는 누구도 바라던 상황은 아닐 것이다. 몇몇 여성학자들이 이미 지적했듯, 자칫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피해자중심주의’나 ‘2차 가해’ 문제를 “인지감수성”으로 규범화하려면 더 폭넓고 지속적인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미세먼지가 봄볕을 뒤덮어서인지 3월의 대학 풍경치고 꽤 스산하다. 온라인에선 익명을 무기로 상대를 조롱하고 압살하는 말들이 넘쳐나지만, 오프라인에선 다들 모임을 줄이고 말을 아낀다. 개강 총회 때 여학생, 남학생이 따로 앉은 모습이 낯설고, 학생회가 ‘중립성’을 지킨다고 갖가지 절차에 매달리는 모습도 안쓰럽다.
안타깝게도 5천만 인구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대에 미투운동이 폭발했다. 적어도 우리 주변엔 여성을 물건 취급하며 동영상을 돌려보는 파렴치한보다 젠더 감수성이 충분히 농익지 않거나, 방식과 방향은 달라도 미투를 응원하는 지지자가 훨씬 많다.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이 모두에게 편리한 보행로를 만들었듯, 용기 있는 여성들의 싸움이 불안정한 삶에 피폐해진 20대 남성에게도, 가족이 삶의 전부가 된 70대 여성에게도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제공하려면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계와 적대를 넘어, 여성이 살만한 사회가 모두가 살만한 세상이 되려면 어떤 실천이 필요할까? 더 ‘잘’ 싸우기 위한 숨고르기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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