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26 17:25
수정 : 2019.03.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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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좀비물을 표방한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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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공개된 드라마 <킹덤>은 넷플릭스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자체 제작한 좀비물이다. 영의정 조학주(류승룡)의 음모로 왕이 좀비로 변하게 되고, 왕을 치료하기 위해 왔던 의원의 조수 단이가 왕에게 물려 죽는다. 동래 지율헌의 굶주린 환자들은 죽은 단이의 시체로 만든 고깃국을 먹고 좀비로 변하여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이에 세자 이창(주지훈)이 좀비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파악하고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의녀 서비(배두나)와 함께 좀비와의 싸움을 벌여나가는 내용이다.
<킹덤>에 나오는 좀비는 우리나라 기업 생태계에도 존재한다. 이미 기업으로의 생명력은 다했으나 죽지 않는 ‘언데드’ 좀비기업 말이다. 기업의 수명이 다하면 자금이 마르면서 자연스럽게 청산된다. 좀 더 잘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이 기업을 인수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자금이 이동하게 된다. 좀비기업은 이런 시장 원리를 거스른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자원을 사용하면서도 이윤을 창출하지 못한다. 좀비기업이 생기게 되는 것은 ‘킹덤의 고깃국’ 같은 중소기업 정책들 때문이다. 정책금융이 대표적 사례다.
정책금융은 금융시장을 통해 자금조달이 어렵지만 기술 및 사업성이 우수한 중소기업에 저리 혹은 장기 자금을 융자해준다. 시장에 맡겨두면 중소기업의 좋은 아이디어가 묻힐 수 있다. 정부가 기업의 자금 문제를 도와 좋은 아이디어가 꽃을 피우면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정말 많은 기관들이 정책금융을 제공한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직접대출을 하는데, 그 규모는 지난해 기준 4조원에 육박했다. 중소기업을 위한 공적 보증의 경우,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지역신용보증재단 등을 합한 규모가 80조원을 웃돈다. 한국은행은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를 운용(약 25조원 규모)하고 있고 기업은행·산업은행도 각기 정책금융에 발을 담그고 있다.
이뿐 아니다.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에 대한 지분투자를 통한 지원 체계인 모태펀드도 있다. 모태펀드는 한국벤처투자의 모태펀드, 농식품모태펀드, 산업기술정책펀드, 성장사다리펀드가 있다. 한국벤처투자의 모태펀드가 약정한 출자금만 해도 지난해 말 기준 6조원을 넘어섰다. 재정융자 사업을 굳이 포함하지 않아도 중소기업을 위한 금융지원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잔액 기준 100조원을 훌쩍 웃돈다.
정책금융의 규모가 이렇게 커지면 정책금융기관들은 자금 밀어내기를 하게 된다. 굳이 정책자금을 받을 필요가 없어 상업은행을 이용해도 되는 기업이 좋은 조건의 자금을 받게 되거나, 지원해서는 안 되는 한계기업에 자금이 지원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좀비기업이 만들어진다. 생산성이 떨어져 도태돼야 할 기업이 정책금융으로 연명하는 셈이다.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보면 좀비기업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장우현 박사가 한국기업데이터와 고용보험 자료를 이용한 분석에 따르면(<재정포럼> 2019년 1월호), 우리나라의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매우 역동적이다. 놀랍게도 해마다 기존 일자리 100개 중 40개의 일자리가 없어지지만, 새로운 45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일자리 변동이 커 노동자들이 큰 피해를 볼 것 같지만, 청년들은 이직을 통해 좀 더 양질의 일자리로 이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책금융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외려 퇴출돼야 할 좀비기업을 생존시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며칠 전 정부가 발표한 “혁신금융”의 비전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혁신기업과 창업기업에 모험자본을 공급하면 경제의 활력이 살고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과거에 없었던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화려한 미사여구를 담아 “혁신금융”을 추진하는 비전 발표가 있었지만, 실제 추진은 기존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자금 공급을 늘리는 것으로 귀결돼왔다. 결국 기존 정책금융 체계를 놓아두고서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책금융 기관들은 위험보다는 안전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은 창업 초기에 집중해야 한다. 시장에 안착한 기업에 대해서는 상업 금융을 이용하도록 정책자금 졸업제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정책금융이 우리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는 좀비기업을 양산하는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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