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28 17:02
수정 : 2019.03.29 13:47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
전통적으로 경제학에서는 노동을 숙련과 비숙련 혹은 고숙련과 저숙련 노동으로 간단히 분류해왔다. 기술변화는 노동에 대한 수요에 변화를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현상은 특히 20세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단순노동이 아니라 교육을 잘 받은 숙련노동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더 늘어났다. 이러한 현상에 숙련 편향적 기술진보라는 근사한 학술용어를 붙였다.
그런데 최근에 주목하는 것은 이른바 업무(task) 접근법이다. 이 접근 방법은 개별 직업마다 필요한 숙련도와 교육 수준이 다르며, 다양한 직업을 숙련의 정도에 따라 연속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 개념을 실제 자료에 적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몇몇 실증 분석은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영국 런던정경대의 호스와 매닝은 유럽에 대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오터는 미국에 대해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들은 1980년대 또는 1990년대 이후의 변화에 주목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최고의 숙련도를 요하는 직업, 예를 들어 전문직과 관리직의 고용은 증가했다. 그러나 청소, 돌봄, 건설현장 노동 등 숙련도가 가장 낮은 직업군의 고용도 동시에 증가했다. 최고숙련과 최저숙련의 직업군은 고용이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임금도 꽤 올라갔다.
반면 중간 정도의 숙련으로 분류할 수 있는 직업, 예를 들어 단순히 기계를 조작한다거나 사무직 또는 유통 업무에 종사하는 직업군은 고용이 줄었고 임금이 줄거나 정체했다. 즉, 고숙련과 저숙련 노동에 비해 중간숙련 노동은 고용과 임금 면에서 모두 열등한 위치로 내려앉았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20~30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일자리 양극화다.
그런데 기술이 연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면 1980년 이전에도 내내 같은 현상이 일어났어야 하지 않을까? 호스와 매닝 등 런던정경대의 전통을 잇는 학자들은 1980년대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서 설명한다.
이른바 산업혁명의 역사는 1820~1980년의 오랜 시기와 1980년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1980년 이후의 기술혁신은 정보통신기술이 주도한 것으로 그 이전과 구별된다. 예전에는 전기, 철도, 자동차, 관개시설, 그 밖의 다양한 기계 설비의 도입과 확산이 사람들의 생산성과 숙련도를 전반적으로 향상시켰다. 게다가 20세기 들어 공교육이 확대되면서 많은 사람이 정규 교육을 받고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소득불평등도 축소되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기술혁신은 그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핵심은 자동화와 그 연장선에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이다. 엄청난 속도의 계산능력과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은 거의 모든 업무를 사람 대신 수행한다. 그것도 짧은 시간에 실수와 오차 없이. 생산의 방식은 돌이킬 수 없이 이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로봇이 사람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청소와 돌봄, 미용 서비스 등은 사람의 손과 서비스 정신으로 세세하게 마무리해야 하는 작업들이다. 무언가 제품을 만들거나 조작하는 일은 쉽게 자동화되지만 아무리 해도 자동화되지 않는 일은 여전히 많다. 허드렛일에 가깝지만 사람끼리 대면해서 충성심을 발휘해야 하는 일들, 이런 분야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편리하게 자동화된 서비스도 원하지만 충성 어린 대면 서비스도 원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수준의 교육과 숙련도를 요하는 일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그 대신 추상적이고 전문적인 일을 하거나 관리를 하는 업무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 증가한다. 이들은 스마트한 기계와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거나, 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증식하는 핵심적인 노동이므로 자본과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대부분의 노동은 자본으로 대체되지만,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노동도 있기 때문에 일자리는 고임금직과 저임금직에 집중되고 중간임금 지대는 점점 얇아진다.
인공지능화 추세는 일자리 양극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시장에서 충분하게 창출되지 않고 있다. 막연한 기대는 실망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최근의 일자리 통계와 분배 통계는 우리 경제도 이러한 추세에 본격적으로 합류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혁신성장과 복지확대로 대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일자리 양극화 해소는 난제 중의 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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