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31 17:42
수정 : 2019.04.10 16:51
조형근
사회학자·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
주말 오후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본다. 메인화면에 뉴스 제목들이 흐른다. 장관 후보자들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이, 버닝썬 사건 등 연예계와 공권력 유착 의혹이, 전염병 수준에 이른 몰카 범죄 소식이,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들이 폐지 줍는 사연이, 세월호 영상 조작 의혹이, 최저임금 속도조절 논란이 차례로 명멸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뉴스들이다. 갑질하는 재벌, 등록금 빚을 내는 대학생, 취업에 목숨 거는 청년, 내일이 없는 불안정 노동자, 잘려나가는 중년, 노인빈곤율·자살률 1위 국가(OECD)의 노인에 대한 뉴스들이 아우성친다. 사람들은 자조한다. ‘헬조선’이라고.
잠시만 이 자학에서 거리를 두고 균형감을 찾아보자. 1인당 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다는 나라다. 어찌 나쁜 면만 있을까? 아니, 어쩌면 꽤 괜찮은 나라일 수도 있다. 어떤 노르웨이 남성이 확신했듯이. 2012년 4월19일 이 남성은 한국에 대해 이런 의견을 밝혔다. 일본과 한국은 이상적인 국가인데, 왜냐하면 완전한 단일민족국가이기 때문이라고. 브레이비크라는 이름의 이 노르웨이인은 2011년 7월22일 오슬로에서 77명의 목숨을 앗아간 극우 테러범이다. 법정에서 그는 한국과 일본을 노르웨이와 유럽국가들이 따라야 할 롤모델로 찬양했다. 범행 전 올린 선언문에서는 두 나라의 가부장제, 보수주의, 민족주의를 찬양했다고도 전한다.
최근에는 한 호주 남성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 ‘거대한 교체’라는 제목의 선언문에서 중국, 일본, 대만, 한국을 21세기를 지배하는 나라들로 예시하며, 다양성이 아니라 단일민족국가의 통일성, 전통, 민족주의를 찬양했다는 것이다. 3월15일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의 무슬림 사원에서 50명을 학살한 테러범이 작성한 선언문 중 일부라고 한다.
테러범의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틀리라는 법은 없다. 노르웨이와 뉴질랜드, 호주가 한국과 동아시아 나라들을 부러워하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그 부러움의 이유가 잘 통합되고 안정된 사회라는 데 있다면 동의할 수 있을까?
호주의 비영리 민간 싱크탱크인 경제평화연구소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평화지수에 따르면, 테러가 일어난 2011년 노르웨이의 순위는 조사 대상 163개국 중 9위, 한국은 50위였다. 2018년 뉴질랜드의 순위는 163개국 중 2위, 한국은 49위였다. 국내외 갈등 요인을 모두 고려한 순위다. 노르웨이, 뉴질랜드는 한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다.
세 나라 인구에서 외국인이 얼마나 되는지 비교해보면 한 사회의 안정, 통합과 외국인 비중 사이에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12년 현재 노르웨이 인구의 13%가 이민자와 그 자녀이며, 그중 61%는 비서구 출신이다. 2013년 현재 뉴질랜드 인구의 19%가 아시아·태평양 출신 이민자와 그 자녀들이다. 마오리 원주민은 제외한 수치다. 한국은 어떨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7년 현재 한국 체류 외국인은 약 148만명, 전체 인구 5142만명의 2.9%다. 관광 등 단기 방문자를 포함해도 4.3%에 그친다. 다른 민족들이 어울려서 무척이나 평화롭게 사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단일민족’끼리 이토록 불화하며 사는 나라도 있다.
두 테러범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때로 현실과 인식 사이에 심각하게 거대한 괴리가 생길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 사람들 중에는 제 나라가 한국보다 훨씬 분열되었다고 확신하면서 학살을 저지르는 자들이 있다. 부디 그들이 예외적 개인이기를.
한국에도 이런 인식의 괴리가 없으리란 법은 없다. 3~4%의 외국인이 우리 불행의 원인이라고 믿는 의견들 말이다. 실은 갈수록 이런 믿음이 퍼져나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외국인 혐오가 그저 인식 착오라고 비판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가르치려드는 꼰대 노릇일 뿐. 모든 혐오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외국인 혐오도 마찬가지다. 갈수록 악화되어가는 양극화, 젊은이의 삶에 희망을 주지 못하는 기득권자들, 안정된 자리를 차지한 우리 기성세대들을 이 원인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정확한 진단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우리 삶이 너무나 힘들다고 여겨질 때면 눈을 들어 포털의 뉴스 제목들을 보자. 우리를 힘들게 하는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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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가 열리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문화 공연을 즐기며 들어 올린 촛불의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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