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01 16:50
수정 : 2019.04.10 16:39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5천만명이 넘는 현재 우리나라 인구가 50년 뒤 4천만명 아래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98명이라고 하자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를 특별히 앞당겨 실시하고 우리 사회가 더 빠르게 고령화와 인구 감소의 길로 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 후에 인구절벽, 인구쇼크로도 모자라 쓰나미, 재앙, 반토막 같은 언론 반응이 줄지었다. 그러나 사실 1천만명이 줄어들 것이라는 50년 후의 인구는 37년 전인 1982년 우리나라 총인구수와 같다. 앞으로 50년간 1천만명이 줄어든다고 걱정하지만, 지나온 50년 동안 우리나라 인구는 2천만명 증가해왔다.
인구 그 자체로 미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구 증가는 때로는 부강한 국가의 기초로 간주되기도 했고, 반대로 경제발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취급되기도 했다. 한 사회의 인구 문제는 당대의 경제, 교육, 고용, 주거, 건강, 문화와 연결하여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장래인구추계 발표 내용 가운데 2017년 중위연령이 42살인데 2067년에는 62.2살이라는 점을 두고 한 언론에선 “미래엔 노인만 산다”고 했다. 그러나 반세기 후의 사회에서 60살이라는 연령의 의미를 현재 기준으로 해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돌이켜보면 불과 이삼십년 전에도 만 60살을 넘기면 장수라고 환갑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지금은 60살을 넘겨 사는 것을 누구도 장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앞으로의 5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 사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현재 기준으로 미래를 예단하며 가보지 않은 고령사회로의 변화 앞에서 공포를 앞세울 일은 아니다.
저출산은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가속화한 원인으로 주목받아왔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으로 인한 미래 노동력 부족과 현재 사회제도의 유지, 지방도시 소멸을 걱정하며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묻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심으로 걱정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의 지속가능성이다. ‘저출산’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성과 불안정과 고통이 복합적으로 집약된 지표로 읽었을 때 현실에 더욱 가까워진다. 누군가는 배우자도 아이도 없는 혼자만의 생애를 설계할 수 있다. 다른 누군가는 서너명의 자녀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아이를 원하지만 여의치 않았을 수 있고, 누군가는 아이를 잃었을 수 있다. 합계출산율이 2.1명이건 0.98명이건 사회구성원이 다양하게 선택하는 삶의 방식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미래 준비는 현재 사회구성원의 자율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가로막는 사회제도를 고쳐나가는 것 그 자체에 있다.
<가족과 통치>라는 책에서 조은주 교수는 1960년대 가족계획사업을 통해 자본주의 산업화 과정에 조응하는 핵가족이 우리나라 국민의 일반적인 삶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적은 수의 자녀, 임금노동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와 자녀양육을 전담하는 어머니로 구성된 핵가족이 근대화의 주체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20세기 우리 사회에서 기업은 남성 노동자에게 가족임금을 보장하고 정년을 약속했다. 정부는 남성 생계부양자의 소득을 위협하는 실업과 질병, 퇴직에 대비하는 사회보험제도를 만들어 사회안전망을 구축했다. 가사와 자녀양육은 가족 안에서 전업주부 여성이 전담해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 근대적 가족에 기초한 사회모델이 곳곳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 노동시장은 더 이상 가족임금과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남성 혼자서 가족 부양의 책임을 지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남성과 똑같이 교육받고 일할 수 있는 여성에게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다. 이제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하던 낡은 근대 사회 모델에 종말을 선언하자. 미래를 위한 우리의 준비는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근대적 사회 모델의 흔적을 지워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해마다 고작 30만명이 조금 넘는 아이들이 태어난다. 이 아이들이 모두 충분히 배우고 자신의 역량을 자유롭게 꽃피우며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성별에 따라 일터와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이 구분되지 않는 사회, 누군가에게는 임금노동이, 누군가에게는 무급돌봄이 강요되지 않는 사회, 모두가 일하고 모두가 돌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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