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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2 18:10 수정 : 2019.04.10 16:53

이원재
LAB2050 대표

“한때 5천명이 북적대며 일하던 곳이었는데….” 통영의 텅 빈 조선소 자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직원의 말 속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작업복을 입은 채 나를 안내하던 모습이 더 쓸쓸해 보였다. 그는 전형적인 ‘보통 사람’ 같아 보였다.

경남 거제의 조선소와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꼼꼼히 분석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서 저자 양승훈은 이렇게 썼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심지어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땀 흘리며 성실하게 일하면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직장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 조선소가 그렇다.”

거제에서, 통영에서, 군산에서 문을 닫은 조선소들은 배만 만드는 곳이 아니었다. 성실한 보통 사람들의 꿈도 만드는 곳이었다.

우리 사회 보통 사람들은 누구일까. ‘인서울’은 아니지만 즐겁게 동아리활동을 하며 전공분야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대학생이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합격할 정도로 입사 준비를 하지는 못했지만, 관심 분야에 취업도 하고 공부도 하며 여러 해 동안 지식과 숙련을 쌓은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이다. 부모에게서 부동산을 물려받지는 않았지만, 알뜰히 아끼며 작게는 몇천만원에서 운이 좋다면 몇억원까지 모아 전세금으로 넣어둔 사람들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이들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대기업 노동자가 되어 높은 임금을 받고 가족을 꾸리겠다는 꿈이다. 원청이 아니면 하청으로라도 들어가면 적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고졸 취업준비생도 토익 500점대의 지방대 공대생도 가질 수 있는 꿈이었다. 좁게는 조선업에서, 크게는 제조업에서 생겨난 기회였다. 노동운동의 성과이기도 했고, 기업의 글로벌화와 수출 호황의 결과이기도 했다.

문 닫은 조선소에서는 이런 꿈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조선소만의 일이 아니기에 문제가 더 크다. 최근 나온 통계청 고용동향(2월)에서는 제조업 고용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5만1천개 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사회복지 일자리가 크게 늘었다. 300인 이상 제조업 평균임금은 보건·사회복지의 두 배다. 보통 사람들의 처지는 꼭 그 차이만큼 출렁거릴 것이다.

한국만의 일이 아니기에 더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8년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대부분 국가에서 중간숙련 일자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기술변화와 자동화는 고숙련이나 저숙련 일자리보다, 공장에서 적당한 정도의 기술을 익혀 일하던 중간 일자리를 더 빠르게 파고든다. 단기적 불황이 아니라 장기적 흐름이다.

보통 사람에게 대안은 없다. 중소기업에 가려니 불안하다. 프리랜서로, 독립 노동자로 살자니 보호받지 못한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 중이다. 사회적 경제에 기대를 걸어봤지만 느리다. 설 자리가 없다.

나라는 최고 엘리트나 최대 부자들이 무너질 때 무너지는 게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꿈이 무너질 때 사회는 뿌리부터 곪는다. 제조업 고용위기로부터 우리는 보통 사람들의 비명을 읽어야 한다.

물론 제조업 대공장이 유토피아였던 것만은 아니다. 남성 보통 사람에게는 평생직장이었지만, 여성 보통 사람에게는 ‘차별의 현장’이었다. 여성에게 승진은 멀고 해고는 가까웠다. ‘하청’들은 ‘직영’보다 형편없는 보수에 위험한 일을 감당하며 차별을 감수하던 이중노동시장이었다. 비정규직 차별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어차피 다음 세대까지 지속되기는 어려운 모델이었다.

대공장 작업복은 더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늘어난다 해도 보통 사람 모두를 포용할 수도 없다. 게다가 성차별과 이중노동시장을 이어갈 수도 없고 이어가서도 안 된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조선소 사람들은 작업복을 입고 어디든 다닌다. … 미혼인 직원들은 소개팅 자리에도 작업복을 입고 나간다.” 양승훈의 책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거제에 진입한 보통 사람들은 대기업 작업복과 그것이 제공하는 ‘삶의 안정성’이 자랑스러웠다.

대기업 공장에 대한 자부심을, 우리 사회에 대한 자부심으로 바꿔 보면 어떨까. 공장이 보통 사람들에게 제공해주던 삶의 안정성을, 이제는 국가가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다수의 보통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분배 시스템을 고민하는 것이 그 첫걸음일 수 있다. 고용도 주거도 복지도 교육도 그 뒤를 따라야 한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삶의 안정성’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새로운 길찾기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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