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09 17:39
수정 : 2019.04.12 09:23
|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으로 물의를 빚은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가운데)이 12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책임당원협의회 임원출범식에서 김광림 의원 등과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일부 대학에서 총여학생회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자연소멸이 아니라 총투표 등을 통해 공식 폐지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는 대학의 학생 자치기구의 대표성 위기가 징후적으로 드러난 사건이기도 했다.
대학 사회의 학생 대표성은 여러번 위기에 부딪혔다. 첫번째는 1990년대 중반 등장했던 매우 적극적인 탈정치 요구였다. 학생 자치를 가로막는 낡은 법은 대학생들의 정치화를 적극적으로 막았고, 비운동권 학생회는 정치투쟁이 아니라 학내 복지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이 대학 사회를 지배했다. 운동권인가 비운동권인가는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출마를 결심하는 이들 자체가 드물었고 투표율은 저조해서 며칠씩 투표기간을 연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학생 복지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매우 정치적인 행동이었고, 반값 등록금이 꽤 오랫동안 가장 큰 정치적 의제로 회자되었다. 그리고 이제 또 십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소통’이 새로운 문제로 부상했다. 지난 몇년간 일부 대학의 학생들은 총학생회장단이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다며 탄핵을 단행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정치적인 것’의 내용이 그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각각의 사건 모두 페미니즘 관련 의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몇년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여학생이 모여 있는 곳을 “꽃밭” 운운해서 탄핵당할 뻔했고, 서강대 총학생회는 안희정 1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가 학내 반발에 부딪혀 사퇴한 바 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의 5·18 관련 망언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가 “여성 네트워크를 방해하고 지나친 도덕적 검열을 가하는 자칭 페미 총학을 규탄한다”는 등의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로 해당 성명서가 철회되었다.
장기 386체제를 구축한 이들은 대학 사회에 불고 있는 대표성의 위기와 정치의 내용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학 사회의 변화는 향후 대중정치 방향이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참조점이 될 수 있다. 하나는 이제는 선출된 이후 결과에 ‘승복’하는 식의 정치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대의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대표되는 자와 대표하는 자 사이의 갭을 줄이기 위해서 지금보다 더욱 노력해야만 한다. 당선은 결과가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또 하나는 우리 사회의 성차별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법은 이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의제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를 무조건 여성을 지지해야 한다는 말로 들으면 곤란하다. 이는 여성이니까 절대 안 된다는 말과 동일한 말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단수의 기호에서 복수의 존재로 변경하고자 하지 다시 여성을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려고 하는 정치학이 아니다. 총동문회가 김순례 의원에게 ‘2016 올해의 숙명인 상’을 준 것을 철회하도록 요구한 숙명여대 총학생회의 성명서는 동문 여성들끼리의 싸움을 보여주게 되어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걱정한 일부 학생들의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여성들 간의 의미있는 정치적 차이를 드러내주었다. 김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이 국가유공자 연금액의 240배나 되는 보상금을 요구한다며 ‘거지근성’을 가졌다고 비난하는 가짜뉴스를 공유해서 자신이 소속됐던 약사협회로부터 부회장 3개월 직무정지라는 징계를 받았고, 정부의 회계감사를 거부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를 비호하며 “정부 지원금을 막 썼다고 (정부가 유치원을) 탄압한다”고 성토했으며, 5·18 유공자들을 “세금을 축내는 괴물집단”이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은 인물이다.
여성이 권력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 지원금을 막 쓰고 약자를 패기 위해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여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지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안티페미니즘을 자신의 정치적 입장으로 선택할 것인가? 거기에는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을 비롯하여 경쟁자가 이미 아주 많다. 성차별을 사소한 문제로 취급하여 가능하면 이 주제를 피해가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지금 성차별 문제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2020년의 총선을 앞두고 성차별 문제와 그 해결 방법에 대한 각 정당의 전략과 입장, 소통의 방법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권김현영
여성학 연구자 광고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