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24 16:11
수정 : 2019.04.24 18:54
김광길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지난 일요일 중국 투먼에서 두만강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의 나무계단마다 특이한 구호들이 한글과 중국어로 번갈아 적혀 있었다. “헌법법률이 최고라는 리념을 수립하고 법치중국 건설을 추진하자” “헌법정신을 학습관철하고 전면적으로 의법치국을 추진하자” 등의 구호였다.
법은 자본가 계급의 지배 도구에 불과하다는 마르크스 명제를 따르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 법치가 뭔 말이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마오쩌둥이 이끈 중국 공산당은 1949년에 정권을 잡은 후 반우파 운동과 문화혁명을 거치며 법률 위에 서서 권력을 행사했다. 헌법과 법률에 어떠한 근거도 없이 오직 계급투쟁 이론에 따라 수많은 사회지도층을 체포·고문하고 산간벽지로 추방했다. 중국 공산당은 개혁개방을 결정한 1978년 이후 사회주의 법치 원칙을 내세웠다. 덩샤오핑은 “법제도가 강화되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은 법을 통해서 통치해야 한다. 그리고 법률과 제도는 지도자가 교체된다고 해서 바뀌면 안 된다”라고 천명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여러 법률을 정비했다. 수차례에 걸친 헌법 개정을 통해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과 법률을 지키고 어떤 조직이나 개인도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특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을 천명했다. 행정소송법, 행정허가법 등 각종 행정절차가 정비되고 각종 행정법의 제정을 통해 법치행정을 지향했다. 죄형법정주의를 실현하고 노동교양제도를 폐지하는 등 형사법이 개정됐다. 토지사용권 등을 규정한 물권법의 제정 등 시장경제 관련 민법과 상법이 정비됐다. 법률의 정비를 넘어 법률 집행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행정개혁이 이루어졌다. 사법부 조직이 정비되고 퇴역 군인들이 맡았던 법관에 법률 전문가들이 충원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법치주의는 시장경제의 발달에 따라 경제주체 사이의 분쟁을 법률에 의하지 않고서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필요가 반영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법치경제라 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법치주의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해외투자를 계속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예컨대 중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의 재산에 부당하게 권한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만약 위법한 행정이 있으면 정부에 소송을 제기해서 시정될 수 있어야 했다. 행정소송법 등 각종 행정 관련 법률이 제정된 이유다. 또한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각종 토지사용권·저당권 등 재산권에 관한 법률, 계약 체결과 집행 등에 관한 법률들이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외국자본을 유치하려면 잘 작동되지는 않더라도 형식적으로라도 이런 법률들을 만들어놓아야 했다.
중국 법치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약점이 있다. 중국에서의 법치는 국가권력의 제한을 통해 개인 권리를 보호한다는 측면보다는 국가가 국민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법을 이용하는 측면이 강하다. 당과 정부의 관계, 당내 법규의 위치 등이 중국 법치의 대표적 난점이다. 사법부 독립도 형식적이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법치는 국민의 참여와 기본권 보호로 나갈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우리 나라를 법이 인민을 지키고 인민이 법을 지키는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 법치국가로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연설했다. 북한은 독립채산제인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 가족농 중심의 포전담당책임제, 경제개발구 등의 경제개혁정책을 추진하면서, 개혁 조처를 뒷받침할 기업소법과 농장법 등과 같은 법률적 환경 마련에 나서고 있다. 북한이 중국의 법치 경험을 따라갈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으나, 북한의 최근 시장지향적 개혁과 외자유치 노력은 법치 발전을 요구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북한의 법치는 갈 길이 아직 멀다. 북한이 과도한 군사적 자주노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개방의 길로 나가도록 격려하면서 법치주의를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대표적인 남북경협 사업인 개성공단은 북한의 시장경제 개혁과 법치주의 발전의 실험장 역할을 수행했다. 개성공단의 세금과 회계 제도는 북한 기업소법의 국가납부금과 회계검증제도로 이어졌다. 개성공단의 지적·등기부와 저당권제도는 북한 부동산관리법의 부동산 등록과 여유자금 활용으로 이어졌다.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협은 북한의 법치주의로의 변화를 촉진해 핵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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