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13 16:38
수정 : 2019.05.14 15:02
홍은전
작가·인권기록활동가
2013년의 어느 날 장애인 탈시설 운동가 김성현(가명)은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열명 남짓한 장애인들에게 인권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가 “여러분, 핸드폰을 갖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라고 말하자 그때까지 얌전히 듣고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핸드폰을 갖고 싶다며 손짓 발짓을 해댔다. 흥분된 분위기를 타고 김성현은 그만 “그럼 다음에 만날 땐 핸드폰을 사러 갈까요?” 하고 말았고 사람들은 더욱 열렬히 환호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엊그제 김성현한테 들었는데, 탈시설 운동가인 그녀가 꽃동네에 인권 교육 하러 갔다고 할 때부터 어째 불안불안하면서도 몹시 흥미진진했다. 탈시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장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시설 바깥의 삶과 자유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하나하나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사려면 청주 시내까지 나가야 했으므로, 김성현은 여기저기에 아쉬운 소리를 하며 리프트 차량 여러대와 활동가 여럿을 섭외해야 했다. 약속한 날짜가 되어 꽃동네에 도착한 그녀는 생각보다 일이 훨씬 더 커져 있음을 알았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핸드폰을 만들러 나가겠다는 장애인들과 사전에 시설 쪽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외출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직원들의 갈등으로 사무실이 발칵 뒤집혀 있었던 것이다. 김성현은 꽃동네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겠다며 맞섰다. 마침 원장이 자리를 비운 틈이었으므로 직원들은 한바탕의 설전 끝에 우왕좌왕하더니 결국 길을 내어주고 말았다.
청주 시내엔 마침 그들이 다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큼지막한 핸드폰 가게가 있었다. 조금 전 작은 전투를 승리하고 온 그들을 반겨주듯 문턱조차 없었다고 했다. 한번도 핸드폰을 써본 적 없는 이들이 복잡한 요금제를 이해하고 다양한 기종을 비교하며 선택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핸드폰 가게 옆 카페로 자리를 옮겨 느긋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기로 했다. 거기서 김성현은 한 여성에게 물었다. 시설에서 나가고 싶어요?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언어 장애가 있던 여성은 손으로 써서 말했다. “5시에 일어나는 게 싫어요.” 느리지만 한자 한자 힘주어 쓰던 그 문장은 김성현의 가슴에도 새겨졌다. 새벽 5시. 꽃동네의 미사 시간이었다.
필담을 나누고 핸드폰 가입서에 한 사람씩 서명을 하는 동안 저녁 시간이 되었다. 그들은 맞은편의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해질녘 공원에 둘러앉아 그들이 짜장면을 먹는 풍경을 상상하면 나는 자꾸 웃게 된다. 자유의 목록엔 이런 것들이 추가되었다. 오후의 카페, 해질녘의 공원, 첫 핸드폰의 흥분,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 꽃동네로 돌아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전열을 가다듬은 직원들과 그들이 내민 각서였다. 다시는 허락 없이 외출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도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한자 한자 꾹꾹 눌러썼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김성현의 말대로 핸드폰을 만드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어서, 그날 핸드폰을 만든 사람들은 그 뒤 대거 시설을 나왔다. 그중엔 송국현도 있었다. 송국현은 2013년에 꽃동네를 나왔지만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했고, 2014년 혼자 있던 시간에 집에 불이 나서 죽었다. 꽃동네의 어떤 직원들은 송국현의 죽음을 이 이야기의 결말로 삼았다. 꽃동네에서 20년을 살았던 스물다섯살 최영은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이듬해 꽃동네를 나왔다. 자신도 불타 죽을까 봐 두려웠지만, 그녀가 더 두려운 건 통제된 시간 속을 살다 천천히 죽어가는 것이었다.
최영은은 며칠 전 <한국방송>(KBS) 9시 뉴스를 통해 결혼 소식을 전하며 이 이야기를 힘차게 이어나갔다. 탈시설한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결혼을 통해 우리가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2009년 장애인 여덟명이 김포의 장애인시설을 뛰쳐나와 시설에서 살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한 지 꼭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2019년 그들은 시설의 상징 꽃동네를 폐쇄하고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을 제정하라며 싸우고 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꽃동네가 없는 사회라니, 수만명의 시설장애인이 해방을 맞이하는 사회라니, 그 혁명적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나는 몹시 가슴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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