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29 17:03
수정 : 2019.05.29 19:07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
벌써 노무현 대통령 10주기를 보냈다. 그는 ‘눈물의 대통령’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유세장에서 흘린 그의 ‘눈물’이 국민적 염원에 대한 대답이라 믿고 그를 대통령으로 세웠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 매력과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잃었기에 그는 정치적으로 실패했다. 그 후 10년 가까운 긴 퇴행의 터널을 지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아 죽는 국민이 있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라고 공언했던 노무현처럼, 문재인 정부는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의료 사각지대에서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400만명에 이르는 한국 사회에서 보장성 강화는 그때도 지금도 절체절명의 과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80% 확대와 공공의료 30% 확충은 시작도 못 해보고 정권을 끝냈고, 오히려 영리병원 허용 등 이른바 의료영리화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젖혔다. 문재인 정부는 잘하고 있을까? 얼마 전 한 국책연구기관이 지난 2년간 보건복지정책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고 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 4월 정부는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 공약대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 70%를 임기 중에 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국민을 기만하는 계획서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 규제프리존법으로 대변되는 의료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해 시민사회와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여당이 된 지금, ‘시범 혹은 연구사업’이라는 명분 아래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하지 못했던 규제샌드박스법, 원격의료, 영리 유전자검사, 건강관리서비스 사업 등 핵심적인 의료영리화 조처를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고 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함께 싸웠던 국회의원들도 요즘은 공천권만 바라보느라 의리를 저버린 지 오래다. 최근 ‘바이오헬스’ 출정식을 바라본 어떤 이들은 ‘제2의 황우석 사태’나 ‘제2의 인보사 사태’가 조만간 터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70%’라는 약속을 지키려면 보험료 인상, 대규모 정부 예산 확대, 공공 의료기관의 양적 질적 확대, 주치의 등록제를 포함한 1차 의료의 파격적 강화, 지불방식 개편 등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 동의와 지지가 필요하다. 이는 ‘정치기술’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한 충분히 안전성도 확보하지 못한 신약을 허가부터 하는 규제완화는 그 자체가 국민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의료비를 급격히 높인다. 더욱이 국민건강보험의 곳간 열쇠를 영리기업에 넘겨주어 비급여 의료비를 대폭 늘리면서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지금대로라면 ‘보장성 70%’ 약속을 못 지킬 것이 뻔해 보이는데, 정권 말기로 가면 “아직 통계치가 안 나왔다. 그래도 우리를 지지해달라”며 은근슬쩍 넘어갈 공산이 크다. 이는 ‘훌륭한’ 정치기술일지 모르지만,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노무현을 싫어하지 않았지만 실패한 정책에 실망한 국민들은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2007년 대선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가 가장 많은 표(30.5%)를 얻어 대통령이 됐지만, 사실 더 많은 표는 37%의 기권층이었다.
특정 정권에 대한 개인의 호불호는 있을 수 있으나 어떤 면에서 모든 정권은 성공해야 한다. 정권 연장의 실패는 정치가에게 그저 잠시 권력을 잃는 것이겠지만 서민들에겐 삶을 송두리째 잃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도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기술’로 슬쩍 넘어가려는 것은 실패로 가는 길이다.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문재인의 힘은 기술이 아니라 진정성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해마다 제대로 된 건강보험 보장률을 발표하라. 그리고 의료영리화를 막지 못하고 정치기술로 슬쩍 넘어가려는 보건복지정책의 방향과 인사, 조직을 전면 개편하라. ‘똑똑한 정치기술자들’의 자리에 겨우 촛불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고 추운 겨울 광장을 지켰던 ‘우둔한 국민들’을 앉게 하라. 그것이 다는 아니겠지만, 그런 시작 없이는 백약이 무효다.
얼마 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울먹였다. 노무현의 눈물처럼 그 눈물 역시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본인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국민을 위해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두번째 ‘눈물의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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