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6.06 17:38 수정 : 2019.06.07 14:21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자녀가 생겼을 때다. 부모가 명분과 힘 모두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는, 극단적으로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직접 접하며 매우 당황스럽고 두려웠던 기억이 있다. 아동은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여러 환경, 상황에서의 충분한 보호를 필요로 한다. 아동은 비록 성인과는 달리 여러 제약이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권리의 주체로서 예외 없이 그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 두가지가 아동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함을 배웠다.

지난달 말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했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돌봄받지 못하는 아동에 대해서는 국가가 확실하게 책임지는 체계 구축” “권리 주체로서의 아동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아동의 주체적 참여 기반 확대” 등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상당 부분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다만 과연 충분히 포용적인가,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느 날 해외입양인들이 다가왔다. 조작된 입양서류들, 수천만원의 입양수수료, 아기가 태어나기 전 친권포기각서와 입양동의서가 작성되던 관행, 그리고 전세계 해외입양인의 3분의 1이 한국인이라는 사실. 충격과 더불어 관련 활동을 시작했다. 부모와 떨어지게 되는 아동보호체계 전반이나 아동양육시설 등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지자체의 아동복지심의위원회가 아동에 대한 보호 결정을 하도록 법에는 규정되어 있지만 위원회가 존재하지 않거나 대부분 유명무실했다. 아직 한국에는 수백개의 아동양육시설, 소위 ‘고아원’이 존재하는데 다수의 시설아동은 부모가 있다. ‘고아원’ 형태에 대한 반성하에 20세기 중반부터 탈고아원 운동이 미국 등 전세계에서 벌어졌지만, 한국은 예외였다.

‘포용국가 아동정책’은 원가정 보호의 강화 등 아동보호체계와 관련해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아동양육시설 등 기존 보호 시설 혹은 형태에 대해 그 존폐 여부를 포함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고 제도의 실질적 운영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충분한 정리가 필요하다. 아동보호기관에 대한 평가가 행정적인 운영에서만 이루어지고 있고 양육의 질, 제공된 처우 등에서는 제대로 평가되고 있지 않다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지적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다문화·이주자·탈북자 출신의 아동에 대한 차별, 난민아동에 대한 정부의 지원 조치로부터의 배제 등 한국에서 끈질기게 지속되는 차별의 복합적인 형태에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또한 강제 아동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거부해야 하고, 한국 기업들이 외국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해야 함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포용국가 아동정책은 이들 아동, 이런 문제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2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미등록 이주아동은 체류권, 보육서비스, 학생으로서의 권리, 건강보험 혜택 등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미워하는 감정보다는 돌아가고 싶다. 그립다.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경찰을 돕다가 체류자격 없음이 드러나 강제퇴거 되었던 몽골 고등학생의 이야기다. 탈북 아동의 경우 성인 탈북자와 마찬가지로 국가정보원 주도 합동신문 2개월, 하나원 3개월, 평균 약 반년간 구금생활을 한다. 특히 이 기간 동안은 법적 보호자도 불분명하고 정규교육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국 학생들이 나의 삶을 이해하고, 나의 느낌과 고통을 같은 인간으로서 함께 나누고 언젠가 서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 기업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마을에 군대가 들어오면서 멀리 국경지대 난민캠프로 쫓겨난 미얀마 소녀의 이야기다. 여전히 한국 기업들은 현지에서 강제 아동노동을 통한 이익을 취하고 있고 부실한 공사로 아동이 사망하기도 하지만 정부는 한국 기업 보호에 급급하다.

어떤 정책이나 계획이든 과거에 대한 충분한 평가, 성찰과 반성 없이는 허구이거나 기만일 수 있다. 적어도 모두의 아동을 표방하고 가장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주목한다는 정책을 표방하고자 한다면, 가장 소외되고 외면받아온 아동들의 문제가 제대로 다뤄져야 한다. ‘사회는 그 사회가 배제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현장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국경을 넘는 접근을 하지 않으면 아동의 미래도, 사람의 미래도, 국가의 미래도 없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전체

정치

사회

경제

지난주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