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0 16:11
수정 : 2019.06.11 14:29
홍은전
작가·인권기록활동가
환규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였다. 피레네산맥의 중턱에서 탈진하기 직전의 그에게 물을 나눠준 인연으로 우리는 40일 동안 함께 걷게 되었다. 그는 충남 서산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는 스무살 청년이었는데, 대규모 공장의 노후화된 설비를 점검하고 교체하는 것이 그의 일이라고 했다. 그에게서는 부모의 도움 없이 자기의 삶을 스스로 책임진다는 단단한 자부심이 흘렀다. 20년 전의 나로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삶에 나는 경외감을 느꼈고 그런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이 기뻐서 여행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환규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두번째 산티아고 순례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고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가 그라뇬이라는 마을에 머무를 때였다. 숙소엔 낡은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그는 취미로 즐길 만한 곡을 몇개 알고 있었으므로 그날 하루는 걷지 않고 피아노를 치며 쉬기로 했다. 조율이 되지 않아 둔탁한 소리였지만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그에겐 꿀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한 순례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어제 만난 순례자가 그라뇬에서 어떤 한국 남자가 피아노 치는 걸 들었는데, 그날의 연주가 살면서 들은 제일 아름다운 음악이었대.” 그것은 물론 환규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고, 환규는 자신의 연주가 누군가를 감동시켰다는 사실에 몹시 감동했다.
“누나, 저 꿈이 생겼어요.”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난 듯 한껏 들뜬 목소리로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조금 긴장하고 말았다.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다짐하기에 스물네살은 미안하지만 좀 많은 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피아노를 고치는 사람이 되려고요.”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나는 당황했다. “그 피아노, 조율이 안 돼 있었거든요. 조율 안 된 피아노가 그 정도면 조율이 잘된 피아노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겠어요?”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라 피아노를 고치는 일이라니.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세계였다. 나는 뭔가 부끄럽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여 목울대에 힘을 꽉 주고 냉면을 오물거렸다.
머릿속이 아득해지면서 동시에 환해졌던 그 순간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반으로 접혀 있던 어떤 세계가 확 펼쳐진 듯한 느낌이었는데, 나는 그것이 말로만 듣던 ‘진짜 노동자’의 세계인가 했고, 그러면 언제나 함께 드는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어째서 그 세계를 마흔이 되어서야 접했고, 그 만남은 어째서 이곳이 아니라 저 먼 곳 스페인에서였을까. 나에게 그 세계는 왜 전혀 보이지 않았던 걸까. 우리 집 한켠에도 피아노가 있었지만 피아노를 만들거나 고치는 사람들의 세계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티브이나 냉장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세계는 엄청나게 멀고 믿을 수 없이 가까웠다.
그 세계를 알고 싶어서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의 <나, 조선소 노동자>를 읽었다. 2017년 거제조선소 크레인 충돌 사고 현장에서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트라우마를 안은 노동자들의 구술을 기록한 것이다. 배를 만드는 사람들의 인생과 노동, 상처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는 이 문명이 어떻게 지탱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청의 하청의 하청인 노동자들이 마감 기한에 쪼여 안전장치도 없이 높은 곳에 올라가고 화학물질 가득한 좁은 공간 속으로 몸을 구겨 들어갈 때 그들을 버티게 하는 것은 배에 대한 애정도, 회사에 대한 애정도 아니었다. 오직 ‘개같이’ 번 돈으로 가족의 생계를 부양한다는 자부심뿐이었는데, 사고 후 산재를 신청하자 공짜로 나랏돈 바라는 기생충 취급을 받으며 그마저도 짓밟히고 말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 구조의 비열함에 한숨을 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지고 말았다. 이 문명의 성과물은 취하면서 어째서 이 문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에는 이토록 무지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 그 사실을 깨우쳐준 ‘진짜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 뒤 돌아갔다. “용접은 이제 안 하려고요. 그 일은 몸과 시간을 갈아서 돈으로 바꾸는 일이에요.” 세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세상에 대해 읽고 쓴다는 일이 말할 수 없이 부당하게 느껴진다. 부끄러움을 견디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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