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1 17:34
수정 : 2019.06.11 19:30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난 루이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아흔에 가까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지만, 덩치는 여전히 압도적이었고 목소리는 호탕했다. 한때 유명세를 떨쳤던 인물들이 이미 그의 주위에 둘러섰다. 나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그에게 인사했다. 그에 비하면 내 몸집은 반절. 내 목소리마저 반토막났다.
화려한 시절을 추억하자고 만든 행사였다. 국제노동기구(ILO)가 노벨평화상을 받고 의욕적으로 세계고용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1969년이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부서의 출발이었다. 야심찬 기획이었고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루이가 선두에서 진두지휘했다. 그리고 50년이 지났고 그 ‘영광의 시절’은 여전히 ‘집 나간 후 소식 없는 아이’다. 그때의 업적을 회고하고 지금 고군분투하는 세대에게 지혜와 용기를 전해 달라는 취지로 당대의 용사들을 불러 모았다.
행사 내내 회고담이 이어졌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것투성이였다. 출중한 경제학자들을 데려온 사연부터 나왔다. 젊은 경제학자는 고용하고, 중견 경제학자들은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훗날 노벨경제학상을 받게 되는 아마르티아 센, 아서 루이스, 바실리 레온티예프, 얀 틴베르헌도 모두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그 자리에서 채용했으며, 30대의 나이에 모두 고위직급에 임용했다고 했다. 귀한 분 모시는 데 지칠 대로 지친 21세기의 비정규직 연구원들은 부러움과 탄식이 뒤섞인 소리를 내었다.
아직도 경탄의 대상인 개발도상국의 비공식 부문 연구도 이 세대가 주도했다. 사연을 듣자 하니, 박사 수십명이 케냐를 동시에 방문해서 몇주 동안 분석하고 토론해서 만든 것이란다. 흐릿해진 흑백사진을 보면서 그들은 잊힌 인물을 찾아내고 생존 여부를 물었다. 옅은 떨림으로 시작된 말들은 짙은 자부심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런저런 눈치를 보며 연구하는 게 일상화된 젊은 직원들은 ‘늙은 패기’에 쪼그라들었다.
지금 현안이 되는 문제도 그때 죄다 다루었다.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하기 때문에 ‘분배를 통한 성장’을 주장했고, 이를 위해 ‘기본수요’를 근간으로 하는 소득 및 고용 정책을 개발했고, 특히 하위 40% 소득층에 집중해야 하는 정책전략의 실현을 위해 국내총생산(GDP) 계산방식도 소득분배를 고려해서 바꾸자고 했다고 한다. ‘소득주도성장’의 아이디어는 그렇게 나왔고, 세계은행의 빈곤대책과 유엔의 개발지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관련하여 수많은 증언이 쏟아졌다.
곧이어 아쉬움과 한탄이 이어졌다. 그때의 영광을 이어가지 못한 조직과 기구에 대한 힐난이 이어졌다. 직원들의 얼굴에서 흥분과 설레임은 사라지고,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뒤늦게 나는 “당신들이 떠난 뒤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지금 세대가 당신들의 깃발을 끌고 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느냐”고 따졌지만, 원망의 얼굴은 좀체 풀리지 않았다. 그들의 시작이 오늘의 우리였지만 그들은 좀체로 우리를 향해 말을 건네지 않았다. 세대 간 대화는 없고 무용담만 넘친 행사였다. 루이는 “젊은 애들 꽤 괜찮네”라고 하며 떠났다. 그의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톡톡 쳤다. 그들은 여전히 멋지다. 그들이 멋진 만큼 오늘의 우리는 초라하다.
그 다음날, 나는 인턴 수십명을 만났다. 전날에 비하면 평균 연령이 40살 이상 낮아졌다.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어렵사리 인턴 자리를 찾았으나 안도할 틈도 없이 다음 단계를 고민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나의 취업과 직장생활을 가감없이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뒷문’을 통해 쉽게 채용된 과정, 내 앞 세대보다는 낮은 직급에서 시작했지만 ‘운좋게’ 빨리 승진한 과정을 얘기했다. 어려움과 보람이 뒤죽박죽인 생활을 말하면서도 큰 야심 없이 부지런히 일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노라는 식의 겸손도 빼먹지 않았다. 나는 취한 듯 말을 이어갔다. 화들짝 놀라 깨어보니 약속한 시간은 지났다. 무표정한 인턴들을 발견하고 질문은 없느냐고 물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고요함이 참담함이 될까 두려워서 서둘러 회의실을 나왔다.
추억이란 때로는 내가 쌓아올린 강고한 성곽이다. 타인을 허용치 않는 그곳에서 쏟아내는 말은 성곽 안에서만 증폭되는 메아리다. 바깥으로 나온 추억은 정체불명의 소음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추억이란 말하는 자에게는 달콤하고, 듣는 자에게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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