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8 17:55
수정 : 2019.06.1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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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지난 1월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저임금위원회 내에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를 두어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이원화하는 정부 초안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답변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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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15일로 돌아가 보자. 그날 최저임금위원회 회의는 8시간 남짓 이루어졌다. 밤 11시가 되어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의 최종안, 시급 7530원과 7300원이 표결에 부쳐졌다. 최임위는 노동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돼 있다. 투표 결과, 공익위원 6명의 표를 더해 모두 15표를 얻은 노동자위원안으로 결정됐다. 이날 결정된 2018년 최저임금(시급 7530원)은 기존 시급 6470원에서 16.4% 오른 것이었다. 다음날인 16일 정부는 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자영업자 등의 인건비 부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최저임금의 과거 5년 인상률인 7.4%를 초과하는 9%인 월 13만원 정도(노동자 1인당)를 고용주에게 보전해주는 일자리안정자금이 나왔다.
이번에는 2018년 7월14일로 가보자. 최임위는 13일 오전부터 열려 다음날 새벽 4시40분까지 이어졌다. 이날 회의에는 공익위원 9명, 한국노총 추천 노동자위원 5명만이 참석했다. 표결에선 시급 8350원(10.9% 인상)의 공익위원안과 8680원(15.3% 인상)의 노동자위원안이 맞붙었고, 8표를 얻은 공익위원안이 채택됐다. 2017년과 마찬가지로 다음날 정부는 후속대책을 발표했다.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던 일자리안정자금을 계속 지원하는 한편 근로장려금(EITC)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어 7월16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이룬다는 목표가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최저임금은 민간이 민간을 지원하는 제도다. 빈곤과 싸워야 하는 정부가 재정이 취약한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정책 수단이다. 재정이 넉넉하고 국민 동의가 있다면,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대신 재정을 이용해 빈곤층을 지원하는 것이 빈곤 완화에 더 효율적이다. 게다가 우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영세자영업자가 많아 최저임금 정책의 전달 경로가 복잡하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영세자영업자가 저임금 노동자를 지원하는 방식이 돼 버린다. 이에 정부가 영세자영업자의 부담을 덜려고 일자리안정자금을 도입하고, 노동자들의 소득이 기대만큼 늘지 않으니 근로장려금을 확대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2020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관련 대책들도 한번 살펴볼 때가 됐다. 2018년 최저임금은 대략 월 157만원으로, 2017년 135만원에서 22만원 올랐다. 일자리안정자금으로 13만원을 지원해주었으니, 고용이 유지된 노동자의 임금 인상분의 59%를 지원해준 셈이다. 여기에 올해부터 근로장려금이 확대 적용된다. 근로장려금은 저소득 가구가 일을 하면 정부가 일정액을 매칭해서 주는 제도다. 올해 국세청이 안내한 근로장려금 평균 금액은 110만원이다. 월 9만원 정도가 소득보전으로 지급되는 것과 같다. 지난해에는 평균 80만원에 월 6만7천원이었으니 2만3천원 정도 늘었다. 정리하면 2017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금이 월 22만원 늘었는데, 일자리안정자금 13만원을 고용주에게 지원해주고 2만3천원을 저소득 가구에 추가 지원해주는 셈이다.
그런데 노동자 소득 22만원을 늘려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좀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었을까. 예를 들어 22만원 중 3분의 2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민간이 부담하게 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재정으로 소득을 높이는 방안을 설계했다면 어땠을까. 최저임금 일자리 한개에 투입된 일자리안정자금 등의 절반 수준의 재정으로도 가능한 정책 방안이 나올 수 있었다. 애초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에 집착한 결과, 현재와 같이 민간은 지불 능력이 없어 힘들고, 재정은 재정대로 쏟아부어야 하고, 일자리 유지 및 창출 효과는 불확실한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일자리안정자금의 총지출 규모는 2019년 현재 2조8천억원으로, 의무지출을 제외하면 규모로는 1~2등을 다툰다. 조세지출인 근로장려금 규모도 급증해 법으로 정해져 있는 국세감면율 한도를 위협할 정도다. 특히 근로장려금의 경우 근로유인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평탄구간과 점감구간이 넓어지는 데 대한 학계의 우려도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완화해보려고 과도하게 정책을 남발한 결과다. 2020년 최저임금 결정이 잘되기를 바란다. 동시에 관련 정책들도 같이 효율적으로 정비되길 바란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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