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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0 17:02 수정 : 2019.06.21 09:47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는 한국에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정책 조합을 권고하고 있다. 경기가 하강 국면일 때 회복을 강하게 추동하기 위해서는 확장적인 거시정책이 필요하다. 필자는 35년 전에 정운찬 교수(전 국무총리)에게 거시경제학 강의를 들을 때 이를 처음 배웠고 20년 넘게 학생들에게 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 이러한 정책 권고를 할 때는 항상 단서가 달린다. 각 부문의 규제개혁을 통해 시장 기능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할 것. 늘어난 유동성과 정부 예산이 낭비될 가능성이 있으니 정책 권고가 틀릴 가능성에 대비하여 미리 방어막을 쳐놓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거시경제학 교과서에는 여당, 야당, 관료체제와 같은 현실 정치 용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확장 정책을 쓰더라도 당연히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선심성으로 재정을 푼다든지 정치적 주도권을 잡기 위해 확장 정책에 반대한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 지난번에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6조7천억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은 이미 하강 추세를 탄 경기를 방어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무엇보다 지난 3년간 발생한 67조2천억원의 초과세수가 결과적으로 긴축 효과를 가져왔음을 인정한다면 그 일부라도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마음부터 갖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추경안이 경기를 부양하는 정도가 고작 국내총생산(GDP)의 0.1%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하기 전에, 지난 3년간 초과세수 문제가 없었으면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었는지 계산부터 해보아야 한다.

경제정책에는 원칙도 중요하고 이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상황에 대한 인식과 타이밍이 제일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1929년에 시작된 미국 대공황 당시의 에피소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경제가 공황의 수렁 속에 빠져들고 있는데도 미 연준은 통화공급 확대로 대응하는 조처가 가져올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었으며, 재무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재무장관 앤드루 멜런은 보수 강경파답게 후버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노동을 청산하고, 주식을 청산하고, 농민을 청산하고, 부동산을 청산하고 … 경제의 썩어빠진 부문을 도려내야 한다.”

멜런은 1921년부터 1932년까지 세명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 아래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사업가로서 은행까지 소유할 정도의 갑부였다. 그는 재정건전성을 중시했고 감세와 작은 정부를 지지했다. 요즘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채무를 줄이려고 애썼던 인물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에게 보너스를 지급하자는 안에도 반대했는데, 국가채무를 줄이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멜런은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고집이 셌다. 대공황을 수습하는 임무를 맡았음에도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을 완강히 거부했다. 경기침체는 비효율적인 부분을 도려내고 수술하는 적기라고 믿었다. 주가가 급락하고 실업률이 20%를 넘고 은행 수천곳이 파산하는 와중에도,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동정심마저 없었다. 노동은 더 유연해져야 하고 세율을 낮춰야 경제에 활력이 돈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당시 멜런은 후버 대통령 다음으로 증오를 받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탄핵될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단초는 개인적 세무 비리였지만 문제는 정책 노선이었다. 패트먼이라는 민주당 초선 의원이 주도하는 탄핵 절차가 시작되자 후버는 재빨리 그를 물러나게 하고 영국 대사로 보내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했고 1932년에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로 바뀌었다.

현재의 한국 경제가 대공황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대기업, 보수 언론과 정당은 줄기차게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규제완화, 재정건전성, 노동유연성 같은 판에 박힌 주장을 거듭하면서 이번에는 경제청문회까지 열자고 주장했다. 이 정도 상황에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면 앞으로 수십년 동안 상시 청문회 정국이 지속될지도 모르겠다.

현 정부가 방어를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대내외 요인을 다 둘러보아도 경기가 하강 국면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교과서적인 처방으로 돌아가자. 거시경제학 교과서는 역사적 경험과 교훈의 산물이기도 하다. 불황에는 확장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조합으로 대응하는 것이 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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