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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4 17:35 수정 : 2019.06.24 21:31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년 전 영국 런던 인근 요양시설에서 만난 아흔살의 영국 할머니는 병아리색 카디건과 흰 블라우스, 밝은색 치마를 입고 계셨다. 손녀 친구인 나를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동네 사람으로 믿을 정도의 치매였고, 혼자서 침대에 눕거나 일어나는 것도 힘겨워하셨다. 아침마다 요양보호사가 일으켜드리며 무슨 옷을 입으실 건지 여쭙고 할머니가 고른 옷을 입혀드린다고 했다. 화장실과 간단하게 차를 끓일 수 있는 공간이 딸린 개인공간에는 할머니의 오래된 옷장도 같이 있었다. 대학원 학생이던 난 노인요양시설은 모두 이 정도려니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일본과 스웨덴 노인요양시설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막 도입되었을 때였다. 불교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일본의 노인요양시설은 1인실 열개를 묶어 하나의 공동 거실을 두고 식사와 생활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유닛케어를 강조했다. 가정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고자 그런다고 했다. 공간은 넓지 않았지만 방마다 작은 찻상도 있고 족자가 걸려 있기도 했다. 스웨덴의 공립요양시설에서는 부부가 함께 지내는 방을 보았다. 보통 개인실을 쓰지만 원하면 배우자와 같이 생활할 수도 있다고 했다. 건물이나 복도는 흔히 보는 공공기관같이 단조롭고 수수한데 방마다 노인들이 집에서 가져온 오래된 화장대와 나무 옷장, 의자가 주인의 취향을 드러냈다. 노부부가 쓰는 널찍한 방에 걸린 샹들리에와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5년 전에는 미국의 지인에게 부탁하여 시애틀 인근 노인시설 열다섯곳을 방문했다. 미국은 너싱홈(nursing home)이라고 하는 요양시설과 나란히 노인지원주거시설(assisted living)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노인지원주거시설은 기본적으로 노인아파트와 비슷한데 각자 개인공간에서 생활하고 의료든 돌봄이든 필요한 서비스는 별도로 계약하여 이용할 수 있었다. 1층의 공동식당은 때를 맞춘 배식 방식이 아니라 원하는 시간에 가서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장보기(쇼핑), 영화관이나 음악회, 소풍 등의 프로그램은 매일매일 신청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난해 방문한 덴마크에서는 1990년대에 ‘시설’이라는 용어를 없앴다는 것을 강조했다. 혼자 거동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공간도 결국은 여러 기능을 갖춘 주거공간인 ‘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방문 앞에 거주자의 이름표가 다 붙어 있고, 방문객이 누를 수 있는 초인종도 있었다. 개인공간은 침실과 거실, 화장실로 구분되어 있었지만 턱이 하나도 없었고 각종 보조기능과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이래 우리나라에서 내가 가본 노인요양시설은 서른곳이 넘는다. 200명이 생활하는 5층 건물부터 딱 방 두칸인 상가 내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까지 네명이 한방을 쓴다는 점은 똑같았다.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설기준이 그랬다. 침대 네개 혹은 이부자리 네채가 펼쳐진 방에서 개인공간과 사생활을 확보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한 신축 요양시설에서 본 ‘개방형 화장실’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화장실은 양쪽 방 중간에 설치되어 양쪽 방에서 각각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화장실 안에는 칸막이조차 없이 변기가 나란히 두개 놓여 있었다.

최소한의 존엄성도 보장되지 않는 요양시설이 버젓이 존재하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노후의 존엄한 삶에 기울이는 관심과 비용의 정도를 보여준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간된 장기요양비용 비교 연구는 한국의 시설요양 단위비용(주당 1인당 GDP 대비 시설비용의 비중)이 특히 낮다고 지적했다. 장기요양 단위비용은 제공인력의 자격이나 임금 수준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서비스 질에 영향을 미친다. 조사대상 16개국 가운데 한국의 재가요양 단위비용(시간당 기준)은 11위, 시설요양 단위비용은 12위였다. 이와 별도로 고작 2%인 국공립 요양시설 비중도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공적 투자가 얼마나 인색했는지 보여준다.

현재의 노인요양시설을 개인의 존엄과 사생활이 보장되는 노후의 돌봄 공간으로 바꾸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따른다. 이 비용을 기꺼이 치르면서 우리 사회는 늙고 병든 삶의 존엄성에 경의를 표하고 돌봄의 가치를 정당하게 보상하는 사회로 탈바꿈할 것이다. 자, 고령사회를 대비하는 진짜 준비를 하자. 존엄한 노후를 위해 과연 얼마를 지불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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