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1 18:12
수정 : 2019.07.02 09:33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오사카는 일본 전국시대의 마지막 전투 무대로 무역전쟁의 전장으로 꽤나 어울리는 장소였을지도 모르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결전을 앞둔 장수의 얼굴로 오사카의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마주 앉았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무역전쟁의 칼을 뽑아 휘둘렀고 중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은 지난해 이후 현재까지 약 2500억달러의 중국 상품에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은 미국의 1100억달러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는 이번 회의에 대중 강경파 피터 나바로를 동반하여 우려를 던져주었고, 양국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디지털 경제에 관한 회의에서는 서로를 비판하는 설전이 오갔다.
그러나 양국 정상회담 결과 미국은 추가적인 관세 부과를 중단하고 무역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에 신경쓰는 트럼프는 중국이 미국의 농산물을 구입하기로 한 성과를 강조했다. 관세 부과에 대해 미국 산업계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어 트럼프가 전면전을 추진할 가능성이 낮다는 예상대로였다. 또한 중국은 중국 기업을 공평하게 대우해달라고 요구했고 트럼프는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일부 해제할 가능성을 엿보였다. 결국 옛날의 전투와는 달리 미-중의 담판 결과는 일종의 휴전이었다. 양국 모두 그리고 세계 경제에 다행스러운 결과였고, 관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양쪽이 돌아섰지만 언제 다시 전투가 재개될지 모른다. 아마도 이 전쟁은 치열한 한판 싸움으로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미-중 갈등의 핵심은 세계 경제의 패권을 둘러싼 시장 주도의 미국 시스템과 국가 주도의 중국 시스템 사이의 대립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국가 주도의 보호와 지원을 통해 산업과 기술을 발전시켜 경제 규모가 조만간 미국을 추월할 전망이며 인공지능과 같은 일부 기술은 미국과 대등할 만큼 발전했다.
미국은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중국식 경제 시스템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어 합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은 중국의 국내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고, 지난 5월 무역협상이 결렬된 이유도 중국 지방정부의 산업보조금 폐지였다. 또한 동남아 대부분의 국가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기로 했고 유럽에서도 반화웨이 기류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 중국도 기술전쟁에서 버티고 있다.
관세라는 무기는 자신도 다치게 할 수 있다. 이미 몇몇 실증연구는 미국의 대중국 관세 부과가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대부분 미국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갔다고 보고한다. 또한 현재는 세계화와 아웃소싱의 발전으로 기업들이 전세계에서 부품 등 중간재를 조달하며 글로벌 가치사슬이 발전되었고 국제무역도 이를 따라 확대됐다. 그래서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는 중간재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거나 중국에 수출하는 미국 기업에도 타격을 주어 관세 부과에 대한 미국 내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보호무역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얼마나 지속될지 주목해야 한다.
미-중 간 무역전쟁은 이제 세계 경제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무역전쟁으로 인해 최악의 경우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할 것이라 전망한다. 문제는 한국이 무역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나라 중 하나라는 점이다. 한국은 중국에 반도체를 대량 수출하고 중국은 완제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식으로 글로벌 가치사슬 참여도가 높기 때문이다.
사실 무역전쟁 이전부터 국제 교역의 둔화로 세계화가 멈춰 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경기둔화로 국제무역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았고, 한국의 수출도 최근 크게 부진했다. 수출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연 2.1% 증가에 그쳤고, 수출의 둔화가 심각한 경기부진으로 이어졌다. 무역전쟁이 장기화된다면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수출이 빠르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수출 시장을 확보하는 것과 함께 수출 의존을 줄이고 소비와 내수를 키우기 위한 노력이 꼭 필요할 것이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민간소비가 정체됐고 국내총생산(GDP)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다. 성장 촉진을 위해 불평등 개선과 가계소득 증가로 민간소비의 성장기여도를 높이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다. 전운이 가득한 세계 경제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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