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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3 16:37 수정 : 2019.07.04 14:14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달 중순 베이징에 센터를 둔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노동자 문학과 미디어 실천’을 주제로 워크숍이 열렸다. 홍콩 시위 이후 중국 정부가 국외 학자와의 접촉을 더욱 불온시하고 민감한 주제에 관한 국제회의가 줄줄이 취소되던 때라 노동을 전면에 내세운 학술행사가 열린 게 기적이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주최 쪽이 공식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소문을 듣고 모여든 연구자와 학생들로 회의장은 이틀 내내 북적였다. 워크숍 참가자의 면면도 흥미로웠다. 중국 안팎에서 노동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들 외에도 오랫동안 노동운동에 몸담아온 활동가들, 연극과 노래로 자신의 삶을 얘기해온 노동자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영어권 나라의 연구자를 위해 통역인이 배석했지만, 낯선 언어로 워크숍 열기를 식히고 싶지 않아 다들 중국어 발표를 고집했다. 공장 노동자 출신 여성 활동가들 사이에서 “우리 선생님”으로 통하는 사회과학원의 한 교수는 중국 노동자들과 함께 미국 노동운동 조직을 탐방한 경험을 소개했다. 나는 선전 폭스콘 공장지대에서 처음 만난 여성 노동자를 6년 남짓 도시와 농촌,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부분적으로나마 동행하며 기록한 분투기를 전했다. 중앙희극학원의 한 교수는 농촌 출신 가사노동자들과 공연을 준비한 과정을 술회했다. 고립된 노동으로 위축된 자아를 새롭게 몸을 써가며 보듬기 시작한 여성들에게 주말의 공연 연습이란 완성된 드라마만큼이나 극적인 경험이었다. 홍콩 하층민들의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전개되는 미디어운동 사례를 발표한 싱가포르 대학의 교수도 과정의 의미를 복기했다. 비좁은 홍콩의 골목길에서 비디오를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사이에 형성된 작은 교감이 정치적 문제의식을 싹틔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 언론에 제법 알려진 베이징 교외의 ‘노동자의 집’은 문화운동에서 공동체 실험, 학술 연구에 이르기까지 이번 워크숍의 플랫폼 구실을 했다. 워크숍을 조직한 시카고대학 교수는 ‘노동자의 집’에서 선보인 연극 공연 <우리들>을 분석하면서 “노동자를 대표하고 대변하기보다 노동자와 함께 생각하는” 극의 힘을 강조했다. 노동자 출신의 제작자 겸 연출가는 엄지를 치켜들며 잔뜩 긴장한 그를 응원했다. 독립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뤼투는 한국에도 번역된 신노동자 3부작을 회고했다. 노동자들이 이 책을 읽는 모습을 열망하며 책을 썼지만 그 점에선 분명 실패였다고 성찰한 뒤, 노동자를 대할 때는 물론 일상에서 누구도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세태를 비판했다. 20년 가까이 노동운동에 몸담으면서 ‘노동자의 집’을 지켜온 왕더즈는 워크숍 참석자들에게 “지식인과 노동자 사이의 거리는 어쩔 수 없다”며 운을 떼고는, 그럼에도 거리가 너무 벌어지지 않도록 ‘반보’의 긴장을 유지해주기를 당부했다.

캐나다에서 온 중국 출신의 젊은 교수가 젠더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하자 갑자기 불편한 기류가 감돌기도 했다. 중국의 노동운동이 여성과 성소수자의 문제를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다는 지적에 왕더즈가 발끈했다.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비판에 앞서 상황에 대한 이해부터 했으면 좋겠다”며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반보가 순간 백보 이상 벌어진 느낌이었다. 긴장을 다독인 사람은 여공밴드의 보컬인 돤위였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이틀 내내 칭얼대는 딸을 데리고 워크숍에 참석한 터였다. “공장에서 일할 당시에는 페미니즘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관심도 없었고요. 하지만 딸을 낳고부터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남성 노동자들은 그런 고민을 별로 안 하지만…. 여성 노동자는 아이가 생기면 저항을 하는 게 정말 힘들더군요.” 고인 눈물을 닦고 기타를 집어 들었다. 1993년 여성 노동자 8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선전시 인형공장 화재부터 폭력을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하고 복역 중인 농촌 여성의 사연까지, 그녀가 나지막이 내뱉는 소리가 노래가 되고 시가 되었다. “20년을 맞았지. 20년을 참았지. 단 한번도 저항하지 못했지.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중국이”라는 주어로 시작했으면, ‘친중’과 ‘반중’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전제했으면 주변으로 밀려났을 주제들이 노동이라는 세계 보편의 주제를 두텁게 감싸면서 다양한 논의를 촉발했다. 실적 채우기에 급급한 한국의 각종 회의에서 빈번히 느낀 공허감을 정치적 혹한기의 중국에서 달랠 줄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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