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7.07 17:47 수정 : 2019.07.08 13:52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한때 사람들은 권력의 감시를 두려워했다. “빅 브러더가 당신을 보고 있다!” 세상이 바뀌고 두려움도 바뀌었다.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이 없어!” 존재감의 부재 또는 몰인정, 바로 그것이 지금 시대의 저주다.

저주를 뒤집으면 행복이 보인다. 남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으면 행복해질 수 있고, 때때로 관심은 돈과 권력이 된다. 광고주가 스타를 섭외하고 정당이 유명인을 접촉하는 까닭이 이해된다. 스타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그가 출연한 광고에 관심을 기울이며, 유명인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그가 속한 정당을 지지한다. 언뜻 모두가 윈윈이다. 스타와 유명인은 출연료나 국회의원 자리를 챙기고, 광고주와 정당 역시 수익을 내거나 권력을 취한다. 우리는 관심이 돈이나 권력이 되는 세상에 산다.

그래서 관심경제다. 화폐경제에서 자본이 화폐이듯 관심경제에서 자본은 관심이다. 화폐자본과 마찬가지로 관심자본은 거래, 축적, 상속된다. 스타는 자신의 관심자본을 기업이나 정당과 거래한다. 이미 스타이거나 그러기를 원하는 배우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조심스레 관리하는 건, 적어도 관심경제의 틀에서 보면 관심자본을 축적하기 위함이다. 화폐자본과 마찬가지로 관심자본 역시 상속된다. 유명인의 자녀에게 관심이 가는 건 당연지사, 부모의 유명세를 상속받은 자녀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관심자본은 모든 이에게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간략히 관심자본가와 “주목노동자”(사회비평가 박권일)로 구분할 수 있다. 양자의 대립도 중요하지만 내 관심은 다른 데 있다. 관심을 끄는 방법이다. 물론 그와 관련해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차이가 있겠지만 한가지 점에서 동일하다. 모두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관심을 끄는 방법은 규범과 가치를 기준으로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째, 규범과 가치를 준수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활동 영역에서 출중한 능력을 보여주고 비범한 성과를 내면 관심과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스타 연기자, 문필가, 운동선수, 정치인, 연구자는 그렇게 탄생한다. 둘째, 규범과 가치를 위반하거나 초월함으로써 타인의 관심을 끄는 방법이다. 사실 위반은 가성비 높은 관심자본 획득 방법이다. 마돈나의 ‘마돈나 룩’, 레이디 가가의 ‘생고기 드레스’, 박진영의 ‘비닐 바지’를 보라. 그들은 출중한 가창자이거나 퍼포머이거나 창작자이지만 ‘특별한’ 의상을 통해 대중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규범과 가치의 위반은 의상에 그치지 않는다.

“그를 살해하면 내가 그의 명성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죽이기 전까지 나는 미스터 노바디였다.” 존 레넌을 살해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의 말이다. 역겹고 언짢지만 그의 말이 옳았다. 무명인 채프먼은 가치와 법을 위반함으로써 유명인 채프먼이 되었다. 단지 관심을 받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그는 최악의 관종(수단을 가리지 않고 병적으로 관심을 좇는 종자)이다.

악행으로 유명해진 범죄자, 이를테면 연쇄살인마는 주류의 관심자본가와 비슷한 방식으로 팬덤을 모은다. 영국의 사회학자 크리스 로젝에 따르면, 팬덤은 악당이 보여주는 ‘위반의 환희’에 열광한다. 팬덤에게 “악당은 문명사회가 강요하는 공격성과 섹슈얼리티의 금기를 용감하게 깨부순 영웅이다”. 말하자면, ‘너희들이 비난하는 범죄자는 우리를 억압하는 사회에 저항하는 영웅이다’.

한국에도 그와 유사한 팬덤이 존재한다. 이곳의 팬덤이 추종하는 관심자본가, 아니 ‘관종’자본가들이 연쇄살인마와 같은 악당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배설하는 막말, 혐오와 증오로 가득한 발언과 행동의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에 열광하는 팬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을 비난하는 건 쉽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팬덤이 관종자본가를 추종하는 이유를 헤아려, 팬덤을 설득하고 관종자본가를 고립시키는 일이다.

팬덤에게 관종자본가는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에 저항하는 영웅이다. 그래서 관종자본가의 거친 발언과 추한 행동을 비난하는 건 전혀 소용이 없으며, 되레 화만 키운다. 그것이 팬덤을 열광시키는 매력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못살게 구는 자들에게 시원하게 한방 날렸으니 얼마나 통쾌할까. 차라리 다음에 힘쓰자. 그들이 부당하게 억압당하는지 살펴보고, 만약 그렇다면 그들과 함께 저항할 방법을 찾자. 혐오의 관종자본가가 점거한 저항의 요충지를 되찾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