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8 16:54
수정 : 2019.07.08 21:13
홍은전
작가·인권기록활동가
지난해 어느날 김영조씨는 문자를 한통 받았다. 그가 10년간 몸담았던 의용소방대에서 보낸 것이었는데, 제천 화재참사의 소방지휘관을 처벌해선 안 된다는 서명운동에 동참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부주의함에 그는 크게 상처받았다. 딸의 죽음을 슬퍼해주던 사람들의 또 다른 속마음을 아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자신도 그 운동에 동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더욱 외로워졌다. 2017년 12월21일 그날, 그는 화재 현장 앞에 있었고, 불타는 건물 안엔 그의 딸이 있었다. 딸이 6층에 있다고 미친 듯이 소리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와중에도 그는 휴대폰을 놓지 않았고 딸이 의식을 잃지 않도록 계속 이름을 불렀다. “다애야, 다애야, 곧 구조될 거야.”
사다리차가 도착했을 때 그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사다리는 펼쳐지는가 싶더니 크게 휘청였고 이내 다시 접혔다. 유리창을 깨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전기선을 제거할 한전 차량에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분일초가 급박한 순간에 그런 어이없는 장면을 보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자리를 비켰다 돌아온 사다리차가 제대로 펼쳐지기까지 영원 같은 시간이 흘렀다. 수화기 저편에서 서서히 잦아들던 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그는 딸을 시신으로 만났다. 아니, 만나지 못했다. 딸의 예쁜 모습만 기억하라며 사람들이 말렸기 때문이었다. 딸의 옆에 떨어져 있었다던 휴대폰을 받고 그는 오열했다.
불법 증축된 건물은 옥상이 막혀 있었고, 살기 위해 옥상을 향해 올라간 사람들은 옥탑 아래서 모두 죽었다. 복잡한 건물 구조를 잘 아는 건물 관계자들만이 무사히 탈출해 구조되었다.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허비되었다. 현장에 도착한 지휘관은 2분에 걸쳐 방화복으로 갈아입은 후 화재 현장을 둘러보지도 않은 채 뒤늦게 도착한 소방서장에게 지휘권을 넘기기까지 16분 동안 어떠한 조처도 지휘도 하지 않았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그는 액화석유가스(LPG) 탱크 주변의 불을 끄는 데 집중했다고 해명했지만, 티브이에 출연해서는 ‘도착해 보니 아주 큰 불이었고 그 정도면 골든타임은 이미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시간 딸은 살아 있었고,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소방청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화재 당시 소방대원의 건물 진입은 충분히 가능했고 그랬다면 상당수의 생존자를 구조할 수 있었을 것이 확인되었다. 제천시 소방인력은 전국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미흡했던 현장 지휘로 그마저도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무전기는 터지지 않았고 사다리차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119상황실과 화재 현장의 소통은 원활하지 못했고 부적절하게 출동한 헬기는 화재를 더욱 확산시켰다. 안전 불감증 사회와 무능한 소방당국이 키운 사회적 참사에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이 앞을 다투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난 지금 이 일로 처벌받은 사람은 건물주와 관리인, 세신사, 카운터 직원 같은 힘없는 개인들뿐이다. 불법 증축의 인허가와 허술한 소방관리, 구조의 실패를 책임지는 공무원은 아무도 없었다.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 그것이 이 사회의 확고한 시스템이었다. 경찰은 소방지휘부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검찰은 기소하지 않았다. 유가족이 항고했으나 기각되었다. 이에 불복해 법원에 낸 재정신청도 기각되었다. 그러자 소방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유가족과 보상금을 협의 중이던 충청북도가 돌연 자신들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며 자신들이 하려는 것은 ‘보상’이 아니라 ‘위로’임을 강조했다.
김영조씨가 말했다. “우리나라엔 성역이 세가지 있습니다. 유재석과 김연아, 그리고 소방관이요. 우리는 영웅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는 의용소방대에서 탈퇴했고 평생 살아온 고향을 떠났다. 세월호와 완벽하게 닮았지만 절묘하게 다른 어려움에 나는 작게 탄식했다. 그는 밤마다 불타는 건물 앞에 서서 살려달라는 딸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으므로 매일 밤 그는 힘없는 부모인 자신을 벌한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위로만 넘치는 사회에서 피해자들은 폐만 끼치는 존재가 되었다. 이제라도 충청북도는 책임을 인정하고 희생자들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억울하게 죽은 고인들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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