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8 17:46
수정 : 2019.07.19 13:48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꿈은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군대를 보유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연임을 3선으로 제한한 자민당의 당규가 유지된다면 그의 임기는 2년 남짓 남았다. 아베노믹스로 유명해졌지만, 그는 원래 경제보다 안보와 교육에 더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초등학생 때 별명이 ‘안보 아베’였다는 그는 우익 정치인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개헌과 함께 우경화 교육을 추진해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 아베의 최종 목표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를 언론이 만든 허구라 규정하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후원했으며 권력을 잡자 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기본법을 제정해 밀어붙였다. 일본의 재무장을 위한 정신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세상이 변해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추진하고 영국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전쟁은 기정사실화되었고, 이 틈을 타고 일본은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부품과 소재의 수출 규제를 선언했다. 시장경제의 원리가 분업과 교환에 있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다 알진대, 아베 정부는 자국 기업의 이익에도 반하는 조치를 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 경제의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되면서 국가주의와 보호주의가 본격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저성장을 탈출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다른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집권 연장을 노리는 중국의 시진핑은 대일 강경파이고, 일본의 아베는 미국을 붙잡고 중국과 한반도를 견제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취임 당시만 해도 대국을 이끌기에 너무 유치한 인물처럼 보였지만,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슬로건은 미국인들 사이에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한국은 매우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특히 미-중, 중-일 간의 갈등은 장기화·구조화될 전망이다. 세 나라와의 무역 규모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기 때문에 무역으로 얻는 이익과 성장이 과거와 같은 속도로 진행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였지만, 그저 강대국과 부딪치길 주저하는 태도만으로는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어려워 보인다.
사람의 심리에는 사실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나쁜 일이 벌어지면 그것을 외면하려는 속성이 있다고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가 왔다. 이때 자학적 패배주의에 빠지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강점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며, 긴 안목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동북아 국가로서 한국은 중국, 일본과 차별화되는 특성을 가진 국가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관료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 나라는 대대로 관료주의 전통이 강한 특징을 갖고 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은 공산당 관료가 지배하고 일본은 보수 정치인과 관료가 주도한다. 둘 다 전체주의 속성을 갖고 있는 나라다. 그럼에도 서구 열강과 경쟁하면서 여기까지 발전한 것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를 통치하게 하는 그 나름의 사회질서가 유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장점은 셋 가운데 가장 민주화된 국가란 점이다. 한국도 전통적인 관료제 국가이긴 하지만 거기서 벗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싸우면서도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나라, 5년마다 정권이 냉혹한 심판을 받는 나라다. 변화와 진보가 가능한 나라인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힘을 과시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19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일부를 새겨볼 가치가 있다. “전제군주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자비로운 상태로 남아 있을 리 없고, 설사 그렇게 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인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위대한 사상가의 언어를 빌리자면 이번에 일본 정부가 취한 조치는 “지도자의 머리에 어쩌다 떠올라 아직 검토되지 않은 조잡한 계획을 향해서 돌진하려는 유혹”의 결과다.
한국은 서방을 포함한 전세계 오피니언 리더들로부터 인정받는 민주적이고 보편적인 복지국가로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한다. 험난한 경제전쟁을 견뎌야 하며 그 과정에서 비록 양적 성장을 다소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바른길로 가야 한다.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되 빈부 격차가 적은 포용적 민주국가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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