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조국 장관의 위선과 ‘범죄’를 좇다보면 그로 상징되는 386세대를 만나게 된다. ‘조국과 그 일당 386이 만악의 근원이다.’ 이런 그림 매우 낯익다. 그래, 20년 전 독일에서 본 적이 있다. 1998년 보수정권이 물러서고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가 들어섰다. 권력의 외곽에서 도사리던 68세대가 정권을 잡은 것이다. 연정의 두 수장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이자 부총리는 모두 68세대의 상징이었다. 모든 독일 시민이 새 정부를 기껍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들을 못미더워했던 보수세력과 시민은 특히 그랬다. 68세대가 독일의 문화 전통을 파괴했다고 생각했다. 전통 파괴자들이 급기야 정권까지 잡으면서 기존의 문화 비판에 정부 비판이 포개졌다. 그런 새로운 형식의 비판을 “68세대 맹비난”(68er-Bashing), 곧 ‘68세대 때리기’라 불렀다. 68세대 때리기에 가혹하게 시달린 정치인은 단연 요슈카 피셔다. ‘학번’이 없는 고등학교 중퇴자 피셔는 1982년 녹색당원이 되기 전까지 프랑크푸르트 68운동의 중심에 섰던 직업 혁명가였다. 의회 정치인이 되면서 많이 누그러졌지만 도발하는 품성은 여전했다. 1984년 연방의원 피셔는 의사당에서 외쳤다. “의장님, 삼가 말씀드립니다. 당신은 더러운 놈이오.” 이듬해 헤센 주정부 환경장관 취임식에서 콤비 상의,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선서하면서 역사적 장면을 남겼다. 피셔는 또한 ‘말 바꾸기’를 ‘시전’했고 위선적 면모를 보였다. 청년 혁명가일 때 폭력에 우호적이었지만, 연방의원 시절에는 국경 밖 군사 개입에 반대했으며, 외무장관 시절에는 발칸반도의 코소보전쟁 개입을 주장했다. 정치활동 시작 이전부터 투기자본에 적대적이었지만, 정계 은퇴 후에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여러 차례 강연을 했고 컨설팅 회사까지 차렸다. 그렇게 피셔는 ‘68세대’스러웠다. 기존의 권위를 질색했고, 관례를 경멸했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긍지와 거침없는 도덕적 우월감으로 가득했다. 독선적 자세와 태도는 ‘점잖은’ 세력과 시민을 불쾌하게 만들었고 세대 때리기의 큰 빌미를 제공했다. 68세대는 현재 세력을 키우는 극우 정당이 ‘애정’하는 단골 악당이다. 노력, 규율, 인내라는 독일의 소중한 가치가 파괴되었다. 현재를 향락적으로 즐기는 데 몰두했던 68세대 때문이다. 교육이 망가지고 청소년 범죄가 늘었다. 권위를 부정하고 폭력을 찬양하는 문화를 독일 땅에 심은 그들 덕택이다. 가족이 해체되고 아이들이 크게 줄었다. 성적으로 문란했던 그들이 피임을 확산시킨 탓이다. 유럽연합이라는 괴물이 등장하고, 난민에게 국경을 개방해서 독일 원주민이 소멸하는 중이다. 독일적인 것을 증오하고 ‘반애국’적인 68세대 덕분이다. 정계 은퇴 후에도 여전히 비난받는 피셔는 급기야 이렇게 말한다. “나쁜 일은 모두 68세대 탓이라는 거지.” “세대 때리기가 국민 스포츠”(디드리히 디더리히센)로 되는 요건을 네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표적이 되는 세대가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68세대의 경우 68운동 30주년이 되던 해에 정권을 잡았고, 386세대의 경우 6월 항쟁 30주년이던 2017년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둘째, 세대 대표자의 추문이 터지고 위선이 폭로되어야 한다. 독일의 외무부 장관과 한국의 법무부 장관 사례를 보면 이 요건도 충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외부의 적이 흐릿해지면서 새로운 내부의 적이 필요한 정치세력이 있어야 한다. 독일의 경우 사회주의 블록이 무너지고 통일(1990년)이 되면서, 한국의 경우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중요한 외부의 적을 상실한 양국의 보수세력은 내부의 적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넷째, 표적 세대의 자녀가 청년이 되고 그들의 상황이 을씨년스러워야 한다. 2000년 즈음 68세대의 자녀 연배인 ‘골프 세대’가 주목받았는데 그들(을 참칭하는 자들)의 구호 중 하나가 “당신들, 이제 자리를 좀 비키지”였다. 386세대 자녀 연배의 청년을 걱정하는 논의가 급격히 늘고 독일의 구호와 비슷한 것들이 난무한다. 물론 골프 세대는 독일 청년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곧 사라졌지만 구호는 살아남았다. 한국의 청년은 어떨지 모르겠다. 아무튼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세대 때리기가 유행하겠지. 우리 모두 다 함께, 이게 다 386 때문이야!
칼럼 |
[세상읽기] ‘386 때리기’가 국민 스포츠 / 전상진 |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조국 장관의 위선과 ‘범죄’를 좇다보면 그로 상징되는 386세대를 만나게 된다. ‘조국과 그 일당 386이 만악의 근원이다.’ 이런 그림 매우 낯익다. 그래, 20년 전 독일에서 본 적이 있다. 1998년 보수정권이 물러서고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가 들어섰다. 권력의 외곽에서 도사리던 68세대가 정권을 잡은 것이다. 연정의 두 수장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이자 부총리는 모두 68세대의 상징이었다. 모든 독일 시민이 새 정부를 기껍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들을 못미더워했던 보수세력과 시민은 특히 그랬다. 68세대가 독일의 문화 전통을 파괴했다고 생각했다. 전통 파괴자들이 급기야 정권까지 잡으면서 기존의 문화 비판에 정부 비판이 포개졌다. 그런 새로운 형식의 비판을 “68세대 맹비난”(68er-Bashing), 곧 ‘68세대 때리기’라 불렀다. 68세대 때리기에 가혹하게 시달린 정치인은 단연 요슈카 피셔다. ‘학번’이 없는 고등학교 중퇴자 피셔는 1982년 녹색당원이 되기 전까지 프랑크푸르트 68운동의 중심에 섰던 직업 혁명가였다. 의회 정치인이 되면서 많이 누그러졌지만 도발하는 품성은 여전했다. 1984년 연방의원 피셔는 의사당에서 외쳤다. “의장님, 삼가 말씀드립니다. 당신은 더러운 놈이오.” 이듬해 헤센 주정부 환경장관 취임식에서 콤비 상의,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선서하면서 역사적 장면을 남겼다. 피셔는 또한 ‘말 바꾸기’를 ‘시전’했고 위선적 면모를 보였다. 청년 혁명가일 때 폭력에 우호적이었지만, 연방의원 시절에는 국경 밖 군사 개입에 반대했으며, 외무장관 시절에는 발칸반도의 코소보전쟁 개입을 주장했다. 정치활동 시작 이전부터 투기자본에 적대적이었지만, 정계 은퇴 후에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여러 차례 강연을 했고 컨설팅 회사까지 차렸다. 그렇게 피셔는 ‘68세대’스러웠다. 기존의 권위를 질색했고, 관례를 경멸했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긍지와 거침없는 도덕적 우월감으로 가득했다. 독선적 자세와 태도는 ‘점잖은’ 세력과 시민을 불쾌하게 만들었고 세대 때리기의 큰 빌미를 제공했다. 68세대는 현재 세력을 키우는 극우 정당이 ‘애정’하는 단골 악당이다. 노력, 규율, 인내라는 독일의 소중한 가치가 파괴되었다. 현재를 향락적으로 즐기는 데 몰두했던 68세대 때문이다. 교육이 망가지고 청소년 범죄가 늘었다. 권위를 부정하고 폭력을 찬양하는 문화를 독일 땅에 심은 그들 덕택이다. 가족이 해체되고 아이들이 크게 줄었다. 성적으로 문란했던 그들이 피임을 확산시킨 탓이다. 유럽연합이라는 괴물이 등장하고, 난민에게 국경을 개방해서 독일 원주민이 소멸하는 중이다. 독일적인 것을 증오하고 ‘반애국’적인 68세대 덕분이다. 정계 은퇴 후에도 여전히 비난받는 피셔는 급기야 이렇게 말한다. “나쁜 일은 모두 68세대 탓이라는 거지.” “세대 때리기가 국민 스포츠”(디드리히 디더리히센)로 되는 요건을 네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표적이 되는 세대가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68세대의 경우 68운동 30주년이 되던 해에 정권을 잡았고, 386세대의 경우 6월 항쟁 30주년이던 2017년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둘째, 세대 대표자의 추문이 터지고 위선이 폭로되어야 한다. 독일의 외무부 장관과 한국의 법무부 장관 사례를 보면 이 요건도 충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외부의 적이 흐릿해지면서 새로운 내부의 적이 필요한 정치세력이 있어야 한다. 독일의 경우 사회주의 블록이 무너지고 통일(1990년)이 되면서, 한국의 경우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중요한 외부의 적을 상실한 양국의 보수세력은 내부의 적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넷째, 표적 세대의 자녀가 청년이 되고 그들의 상황이 을씨년스러워야 한다. 2000년 즈음 68세대의 자녀 연배인 ‘골프 세대’가 주목받았는데 그들(을 참칭하는 자들)의 구호 중 하나가 “당신들, 이제 자리를 좀 비키지”였다. 386세대 자녀 연배의 청년을 걱정하는 논의가 급격히 늘고 독일의 구호와 비슷한 것들이 난무한다. 물론 골프 세대는 독일 청년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곧 사라졌지만 구호는 살아남았다. 한국의 청년은 어떨지 모르겠다. 아무튼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세대 때리기가 유행하겠지. 우리 모두 다 함께, 이게 다 386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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