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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8 18:01 수정 : 2019.10.09 12:51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물가가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한해 전에 견줘 8월과 9월에 각각 0.04%, 0.4% 낮아져 두달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이런 마이너스 물가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65년 이후 처음이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는 배경이다. 디플레이션이 나타나면, 자산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 외에도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실질 채무가 늘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디플레이션은 전반적인 물가 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 디플레이션 현상은 미국의 대공황기와 일본의 1990년대 후반기에 나타난 바 있다. 국내에서는 물가상승률이 크게 낮아진 2014~2015년에 디플레이션 문제가 제기됐다가, 이후 물가상승률이 2%대 수준으로 오르면서 관련 이슈가 가라앉은 적이 있다.

디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총수요 감소로 인한 부분이 크다. 일반적으로 자산가격 거품이 붕괴하거나 통화당국이 과도한 통화긴축을 하는 경우, 총수요가 위축되면서 디플레이션에 진입하게 된다. 총공급 측면에선 과잉설비 및 과잉공급 혹은 빠른 생산성 향상도 디플레이션을 발생시킬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중 하나인 가처분소득을 늘리기 위해 사용된 다양한 정책도 현재 저인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경제 주체들의 기대도 중요하다. 일단 디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면, 자기실현적인 과정을 거쳐 실제로 디플레이션이 실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미래에 물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소비를 지금 당장 하지 않고 미래로 미루게 된다. 기업은 수익이 감소하기 때문에 신규 투자 및 생산을 줄이게 된다. 기업의 수익성이 나빠지면 고용이 줄고 임금도 하락한다. 결과적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 소비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저인플레이션 현상에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디플레이션에는 보통 통화정책으로 대응해왔다. 인플레이션율이 낮은 경우, 물가관리를 담당하는 중앙은행은 이자율을 낮추는 정책을 펴왔다. 이자율이 낮아지면 대출에 대한 이자비용이 낮아져 기업이 투자를 늘리거나 가계가 주택을 구입할 수 있어 총수요를 증가시킨다. 총수요가 증가하면 대체로 물가를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경제가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경우에는 낮은 이자율 정책을 통해 통화공급을 늘려도 총수요를 늘리지 못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중앙은행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쓰기도 했다. 양적완화 정책이 대표적이다. 일본은행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1999년 제로금리 정책에 이어 2001년에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이어 2013년 4월에는 만성적 디플레이션을 타개하기 위해 이른바 양적·질적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통화정책이 여의치 않을 때는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정정책을 쓸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방법은 총수요를 늘릴 수 있도록 확장적 재정정책을 사용하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세금을 줄여주는 감세나 복지정책과 같은 이전지출을 늘리는 것은 디플레이션과 맞서는 좋은 정책이 된다.

디플레이션 예방을 위해서는 확장적 재정지출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총수요가 부족한 것이 저인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조세를 이용해 재원을 충당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증세가 총수요를 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플레이션과 싸울 때는 적자국채를 발행해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경우는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여유가 있다는 것도 이점이다. 정부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년도 적자 재정을 편성한 정부 예산안은 디플레이션 예방에는 좋은 재정운용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음에도 적자국채를 충분히 발행하기 어려운 경우엔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버드대 교수였던 마틴 펠드스타인은 2002년 부가가치세에 대한 인상계획을 발표하는 것이 디플레이션에 대처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가가치세 인상은 제품 가격의 인상을 가져온다. 미래에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소비자는 소비를 미래로 미루는 대신 가능한 한 현재에 소비하려고 할 것이다. 이른바 소비에 있어 기간 간 대체 효과를 통해 디플레이션을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디플레이션은 예방할 수 있다. 늦지 않은 재정의 적극적인 운용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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