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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3 18:23 수정 : 2019.12.24 02:37

홍은전 ㅣ 작가·인권기록활동가

70만원을 주고 캣타워를 샀다. 캣타워는 높은 곳에 올라가길 좋아하는 고양이들을 위한 탑 형태의 구조물인데, 이것을 사느라 두달 꼬박 일해서 받은 원고료의 절반이 사라졌다. 6개월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딘가 단단히 고장이 나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다. 6월에 우연히 고양이 카라를 만난 후 나의 일상엔 혼란과 깨달음, 기쁨과 두려움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카라에게 처음 “사랑해”라고 말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말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소파에서 자기의 앞발바닥을 열심히 핥고 있던 카라는 내 말을 듣더니 뒷다리를 휙 치켜들어 핥기 시작했다. 이렇게 중요한 말을 했는데도 카라가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이 몹시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야옹야옹’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나는 별수 없이 그 후에도 계속 카라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카라와 함께 살며 칼럼 몇편을 썼다. 막연했던 생각들이 며칠간의 씨름 끝에 선명한 문장이 되면 글은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가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닿았다. 하지만 그 여름 내가 가장 소통하고 싶었던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카라였으므로, 나는 나의 언어가 몹시 쓸모없게 느껴졌다. 왕자를 사랑해 인간이 되고 싶었던 인어공주처럼 나는 진지하게 고양이가 되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가을이 되었을 때 홍시라는 고양이의 소식을 들었다. 홍시는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된 길고양이였다. 태풍 링링이 전국을 강타했던 그 이튿날 파주의 한 할아버지가 홍시를 붙잡아 그물망으로 묶은 뒤 커다란 삽으로 여러번 내리쳤다고 했다. 동물자유연대의 활동가가 현장으로 달려갔을 때 홍시는 눈알이 튀어나오고 광대뼈가 부러져 입과 코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사진으로 홍시의 모습을 보았다. 고등어 줄무늬에 하얀 턱시도를 입은 홍시는 카라와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그물에 묶인 채 힘없이 앉아 있던 홍시의 모습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홍시를 구조한 단체에 전화를 걸었고 11월 내 생일에 우리 부부는 홍시를 입양했다. 까칠한 카라와 달리 홍시는 순하디순한 고양이였다. 품에 안으면 아기처럼 한참 동안 가만히 내 눈을 응시했다. 홍시의 초록빛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홍시의 엄마 고양이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홍시와 함께 살며 몇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글을 썼다. 하지만 그 가을, 내가 누구보다 인터뷰하고 싶은 존재는 홍시였다. 태풍 링링은 정말 무시무시했는데, 그날 너는 아무것도 못 먹었겠구나. 배가 많이 고팠지? 그래서 그다음 날 그 할아버지네 텃밭에 갔었니? 그 사람이 너를 그물망으로 꼼짝 못 하게 묶었을 때 얼마나 무서웠어? 눈을 잃을 정도였다니 얼마나 아팠니? 혹시 그날 엄마와 헤어졌니?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물망에 갇혀 ‘애-응 애-응’ 하고 울었을 홍시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사랑한다고, 이렇게 살아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며 홍시를 꽉 안아주었다. 홍시는 찹쌀떡처럼 하얗고 도톰한 발로 내 머리카락을 잡으며 놀았다. 나는 끝내 들을 수 없는 것들을 평생 궁금해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명색이 고통을 기록하는 활동가인데, 두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후에야 내가 듣고자 했던 고통엔 오직 인간의 자리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삽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뉴스에선 그물에 갇힌 채 가스를 주입당해 살해되는 돼지들이 매일같이 보도되었다. 살려달라고 뛰쳐나온 돼지들을 인간들이 삽으로 내리쳤다. 앵커들은 돼지가 아니라 인간의 피해를 걱정했고, 돼지 농가를 살려야 한다며 정치인들은 돼지 인형을 머리에 쓴 채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그들 사이엔 손석희나 심상정처럼 내가 믿고 좋아했던 사람들도 있었으므로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짐승 같은’ 현실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러나 요즘의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 좋은 비장애인이나 좋은 이성애자가 되고 싶다는 말처럼 이상하게 들린다. 이제 나는 좋은 동물이 되고 싶어졌다. 40년을 살면서 한번도 배워보지 못한 그것이 앞으로 살아갈 생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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