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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6 18:06 수정 : 2019.12.27 11:32

황필규 ㅣ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우리는 모두 타협을 하며 산다. 어릴 적 한 질문이 다가왔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밥 세끼를 먹을 수 있는 정당성은 어디서 오는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정당성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느 성인이 그랬듯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굶어 죽는 길을 택할 것인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타협임을 깨달았지만 살아남기로 했다. 적어도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그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며 가급적 덜 타협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개개인의 원칙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최소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지난 8월,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청문회가 있었다. 일부 기업 대표의 뜬금없는 ‘사과’가 있었다. 하지만 기업이 왜 무엇을 사과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그 사과의 내용을 묻는 위원회의 편향성을 문제 삼았다.

11월, 관련 기업의 영국 본사를 찾아갔고 회사 대표의 거듭된 ‘사과’가 있었다. 그러나 2000년 한국 회사를 인수했을 때, 2004년 제품안전성을 점검했을 때, 그리고 적어도 2006년을 전후해 글로벌 제품안전정책을 실행했을 때 무엇이 문제였는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과, 특히 공적 사과란 무엇인가. 사과는 고의 또는 과실로 야기된 잘못된 행위와 결과, 그리고 그에 대한 개인적, 조직적, 집단적 책임에 관한 진실된 인정이다.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존중에 기초한 공개적인 유감의 표시이고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이다. 사과 전에 피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명확하게 하는 것, 즉 진실의 규명은 사과의 필수조건이다(유엔보고서, 2019년).

과거 세월호 참사의 가해자로 지목된 선사와 선장, 해경 일부가 처벌됐다. 6월에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설립과 활동을 방해한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대통령 비서실과 해양수산부 장차관의 강대한 권력을 동원해 각종 회의를 진행하거나 공문서를 작성·배포하는 등 조직적 형태로 범행이 이뤄졌다.”

12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사찰과 관련해 일부 기무사 간부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지휘 감독을 받는 부대원들에게 실종자 가족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직접 하였고, 부대원들에게 첩보 수집 장소를 지정하고 활동 방침을 시달했다.” “부하들이 수집·보고한 세월호 유가족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한 다음에 기무사령부 지휘부에 이 보고서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하여줄 것을 건의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배상·보상, 추모와 기억과 관련된 가짜뉴스를 퍼뜨린 이가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

국가가 앞장서 참사의 피해자들을 군사작전의 대상으로 삼아 사찰하고 조직적으로 공격하고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의 활동을 정부 조직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방해하고, 진상규명 기구의 목적에 정면으로 반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이가 그 기구의 위원으로 임명된 건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민간인 주민을 공격하려는 국가의 정책과 관련하여 민간인 주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으로” “정치적 사유로 집단 또는 집합체 구성원의 기본적 인권을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행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인도에 반한 죄를 구성한다.(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제공하고 이를 계속되는 참사로 만들어온 이들은 인도에 반한 죄의 범죄자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조사, 특히 과거 청와대, 국정원과 검찰과 관련된 조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현 정부의 원칙과 의지에 많은 것이 결정된다.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 어떤 원칙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 얼마나 타협해야 하나. 현 정부는 어디까지 타협하려 하는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국가범죄와 기업범죄의 수많은 가해자가 아직도 일말의 반성 없이 잘 살고 있다. 적어도 이건 아니다. ‘20/20’은 영어로 뚜렷한/완벽한 시력을 의미한다. 2020년은 20/20과 같은 예리한 마음의 눈으로 좀 더 똑바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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